유럽의 경쟁력 제고 방안을 담은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보고서가 한국 방위산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보고서는 '유럽의 무기 구매 비중 대외 의존도가 너무 높으니 유럽연합(EU) 내부 거래로 전환하자'는 내용을 담았는데, 한국은 유럽을 '거대한 잠재 방산 수출 시장'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기 전 총재가 9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 '유럽 경쟁력의 미래'는 방위산업 관련 내용을 비중 있게 다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2022년 2월)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조달이 이어지고 자체 방위력 강화에도 주력하는 상황인 만큼 해당 분야를 빼놓고는 유럽 경쟁력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무기 구매에서 유럽의 대외 의존도가 지나치다고 봤다. 2022년 6월~2023년 6월 EU가 무기를 사는 데 지출한 비용은 약 750억 유로(약 111조 원)인데, 이 중 약 78%가 EU 밖에서 쓰였다. 특히 63%가 미국으로 흘러갔다. 보고서는 "유럽에 비슷한 제품이 있는데도 외부에서 구매가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EU 내 무기 중복 개발·생산이 많아 비용 낭비가 상당하다고도 지적했다. 가령 미국이 주력 전차 에이브람스에 집중하는 동안 유럽에서는 비슷한 무기가 12개나 출시됐다.
무기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도 미흡하다고 봤다. 전체 방위비에서 연구·개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기준 약 4.5%로, 미국(약 16%)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유럽의 안보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배만 불리지 않으려면 유럽 내에서 무기 생산 계획을 조정·조율하고, 공동 지출 및 조달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유럽의 방위 산업 독립성 강화는 한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폴란드와 천무 다연장 로켓,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의 공급 계약을 맺은 한편, 다른 유럽 국가로도 시장을 확대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2022년 6월~2023년 6월) 무기 주문 중 15%는 미국이 아닌 비(非)EU 국가에서 발생했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