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20연승은 가야죠.”
목마름의 정도가 남달랐다. 지금까지 걸어온 반상(盤上) 족적도 화려했지만 여전히 갈증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듯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로 출전, 바둑 국가대항전에서 현재 기록적인 연승 행진 중인 그가 내비친 야심 찬 목표치에서다. 한·중·일 바둑 삼국지로 유명한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우승상금 5억 원)의 새 역사를 편찬 중인 신진서(24) 9단이 제시한 청사진이다.
신 9단은 10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세계 메이저 기전인 ‘제2회 취저우 란커배 세계바둑오픈전’(우승상금 180만 위안, 한화 약 3억4,000만 원) 우승을 기념해 가진 기자간담회 직후 “어느 기전보다 연승전인 ‘농심배’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며 이렇게 밝혔다. 신 9단은 올해 2월 벌어졌던 ‘‘제25회 농심배’에서 수호신으로 출전, 막판 6연승과 더불어 한국팀에 우승컵도 선물했다. 지난 22회 대회 때부터 승수 쌓기에 나선 신 9단의 현재까지 농심배 성적표는 16연승. 현재 컨디션을 감안하면 신 9단의 ‘농심배 매직’도 기대해볼 만한 상황이다.
신 9단은 올해 상반기에 3개(제29회 LG배·춘란배·응씨배)의 세계 메이저 본선 탈락에 이어 ‘제10회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우승상금 1억 원) 결승에서도 대만의 무명인 라이쥔푸(22) 8단에게 패하면서 주춤했다. 하지만 지난달 ‘제2회 란커배’ 우승에 이어 ‘제5기 쏘팔코사놀 최고기사결정전’(우승상금 7,000만 원) 타이틀도 수집,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여기에 직전 농심배에선 신 9단을 제외한 4명의 선수들이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모두 패하면서 어려움도 겪었지만 현재 진행 중인 ‘제26회 농심배’에선 한국팀의 두 번째 주자로 나선 김명훈(27) 9단이 중국과 일본 내 간판스타인 커제(27) 9단 및 이야마 유타(35) 9단에게 승리, 부담도 줄었다. 농심배는 한·중·일 3개국에서 각각 5명의 선수가 출전, 연승대항전 형태로 진행된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선 인공지능(AI) 출몰 이후, 달라진 바둑계 분위기에 대한 신 9단의 진단에도 이목이 쏠렸다. 신 9단은 “AI 때문에 한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대만 기사들도 많이 성장했다”며 “저도 멈춰 서 있으면 밀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세계 바둑계의 현재권력인 신 9단에게도 자칫 엄습할 태만함에 대한 자체 경계심으로 읽혔다.
8년 전, 등장했던 구글 AI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가상 대결을 묻는 질문에 신 9단은 “당시, 알파고의 실력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에 승부 예측이 의미 없긴 하지만 만약 5번기(5판3선승제)로 두어진다면 과감하게 3승에 도전하겠다”며 패기 넘친 답변도 내놨다. 2016년 3월, 혜성처럼 나타난 알파고는 인간계 최강자로 군림했던 이세돌 9단에게 세간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4승1패로 완승했다.
신 9단은 예전에 비해 다소 침체된 국내 바둑 열기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그는 “바둑도 충분히 재미있는 스포츠”라며 “저를 포함해 국내 바둑계 관계자들도 이런 재미를 충분히 살리면서 바둑의 인기를 끌어올릴 방안까지 고민해야 된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817승1무216패(승률 79.09%, 10일 기준)를 기록 중인 신 9단은 57개월 연속 국내 1위에 랭크된 가운데 올해 누적 상금만 13억4,000만 원으로 연간 첫 15억 원 돌파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