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서울에서 시작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과 관련, '저출생 완화'라는 정책 목표에 대한 재점검과 사용자 책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치권의 관심은 최저임금 적용 예외 등 값싼 인력 확보에 집중돼 있지만, 향후 도입 규모를 대폭 확대하려는 계획인 만큼 정책 취지와 예상 수요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학문적 기반 없는 졸속 정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0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 주최로 열린 '국제 돌봄 컨퍼런스'에서는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이 논의 주제로 거론됐다. 지난달 입국한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은 이달 3일부터 서울시 가구 160여 곳에서 아이 돌봄 및 육아 관련 가사 업무를 하고 있다.
제도 본격 시행을 앞두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95만 원 상당 교육수당이 미지급된 사실이 알려지며 한 차례 논란이 일었고, 기존 신청가구 중 절반 넘는 숫자가 이용을 취소해 황급히 재모집에 나서는 등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이날 콘퍼런스에서 전문가들은 해당 제도를 통해 '저출생 완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가 충분히 검증되고 논의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의 대표 사례로 거론되는 홍콩·싱가포르 연구를 보면 (가사도우미 고용을 통한) 경력 단절 예방 효과는 아주 뛰어난 고숙련 커리어를 가진 일부 여성, 외국인 노동자가 5년 이상 한 집에 머문 경우 등 아주 특별한 사례에 한정된다"고 설명했다.
은 교수는 이어 "출산 (제고) 효과도 특수 집단에서만 제한적으로 효과가 나타났으며 이는 모든 국민에게 이 정책을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뜻"이라며 "이주 돌봄 노동자를 들여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학문적 기반 없는 졸속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토론자로 나선 강민석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 연구원은 △사전 수요 파악과 사회적인 논의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빠르게 정책이 추진된 점 △정책 관련 논의가 비용 문제에만 치우친 점 △노동자 권리와 사용자 책임에 대한 논의가 부재한 점 등을 현 상황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특히 정부가 내년 상반기 1,200명 규모로 본 사업을 확대하고, 외국인 유학생·졸업생, 외국인 노동자 배우자 등도 돌봄 인력으로 활용하려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 연구원은 "외국인 노동자가 임금 일부를 본국에 송금할 것을 고려해 생계비 차등을 두는 것은 출신국 차별로 국제노동기구(ILO) 차별금지협약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국내 제도에 비해 '저임금'으로 주목받는 싱가포르 사례는, 임금 자체는 낮지만 대신 고용주 관리 책임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임금 수준이 월 48만~71만 원 수준이다.
강 연구원은 "싱가포르 같은 경우 이용자에게 교육과정 이수, 부담금 납부, 식재료·식비 지급, 민간보험 가입, 피고용인 질병 치료 부담, 휴가 및 고국 귀국 항공편 제공 의무를 두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싱가포르 수준의) 저임금을 지급할 것이라면 그만큼 높은 수준의 보호, 사용자 책임 규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