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재선 도전을 좌절시킨 ‘고령 리스크(위험)’가 올해 78세인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로 넘어왔다. 80대를 목전에 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새로 상대할 민주당 후보는 자신보다 스무 살 가까이 적은 흑인 여성 카멀라 해리스(60) 부통령이다. 그와 처음 맞붙는 10일(현지시간) TV 토론 자리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자격에 대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6월 말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80대인 바이든 대통령이 직무 수행 능력 증명에 실패한 뒤 이번에는 곧 80대가 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고령과 능력에 대한 우려와 의심을 해소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고 9일 보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말은 뒤죽박죽 섞이고 있다. 5일 뉴욕 이코노믹클럽 연설 때 했던 답변이 대표적 근거다. 당시 그는 자녀 양육 비용 압박에 시달리는 노동자 가정을 어떻게 도울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NYT에 따르면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해 걷은 돈을 육아 지원금으로 돌리면 된다는 게 그가 하려던 대답의 요지였다. 하지만 그의 말은 제대로 완결되지 못한 문장, 불합리한 문구, 설득력 없는 논리로 가득했다고 NYT는 분석했다.
당장 민주당 측에서 ‘말의 샐러드’(언어 장애)라는 조롱이 나왔다. 하원 민주당 2인자인 캐서린 클라크 의원(매사추세츠)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그는 문장을 일관성 있게 엮을 능력이 없었다”고 썼다. 6월 토론 때 바이든 대통령이 당했던 놀림이었다. 펜실베이니아대 애넌버그 커뮤니케이션 스쿨의 캐슬린 홀 제이미슨 교수는 NYT에 “바이든처럼 트럼프도 일관성 시험에 들게 됐다”고 말했다.
언어 구사력만 문제가 아니다. 두서없이 여러 주제를 넘나드는 것도 트럼프 전 대통령 연설의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나이가 들수록 심해지는 ‘사고이탈’로 진단한다. 근거 없는 주장을 거침없이 내뱉는가 하면, 착각도 그에게 자주 있는 일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경쟁자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대사와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을 혼동한 적도 있다.
트럼프 백악관 대변인 출신 스테퍼니 그리셤마저 NYT에 “그의 횡설수설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며 “거짓말까지 일삼는 남자에게 지지자는 물론 언론과 대중까지 둔감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리스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여론 흐름도 나쁘다.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트가 지난달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대선에 출마하기에 트럼프가 너무 고령’이라는 대답의 비율이 51%였는데, 바이든 대통령과 경쟁할 때(44%)보다 늘었다. ‘트럼프가 직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다’는 응답은 53%에서 48%로 줄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졌던 연령상 강점은 사라졌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이날 공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신적으로 예리하다’는 표현은 트럼프 전 대통령(52%)보다 해리스 부통령(61%)에게 더 어울린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바이든 대통령(24%)을 두 배 넘는 격차(58%)로 따돌렸던 두 달 전과는 판이한 결과다. ‘트럼프가 나이 때문에 손해를 볼 것’이라고 여기는 응답자가 전체의 절반(49%)에 가까웠고, 나이가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 사람은 3%에 불과했다.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주(州)의 필라델피아에서 10일 오후 9시(한국 시간 11일 오전 10시) 미 ABC방송 주관으로 시작되는 대선 후보 TV 토론은 진행자 질문에 두 후보가 2분씩 대답하는 게 핵심 방식이다. 후보들은 서로 질문할 수 없다. △경제·물가 △불법 이민 △임신중지(낙태) 등 ‘재생산권’(출산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총기 규제 △유럽·중동 전쟁 등이 의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수천만 명이 시청할 토론은 해리스에게는 자신의 경제 의제를 주장하고 아직 자신을 잘 모르는 유권자들한테 본인을 소개하는 자리가, 트럼프에게는 고물가와 국경 불안 등 실정을 저지른 바이든 행정부에 해리스를 단단히 묶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