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가 편지 써줘서 해결"…긴박했던 플루티스트 김유빈의 오디션

입력
2024.09.1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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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심포니 플루트 종신 수석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최연소 수석 7년 만에
미국으로 이주해 수석 임용 6달 만에 종신 결정
13일 서울시향과 모차르트 플루트 협주곡 협연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지구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플루티스트 중 한 명과 계약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한국 플루티스트 김유빈(27)의 수석 선임을 공식 발표한 지난해 8월 영국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이렇게 평했다.

김유빈은 유럽과 미국의 명문 악단에서 각각 종신 수석 지위를 부여받은 몇 안 되는 연주자다. 2016년 19세 때 독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최연소 수석으로 임명돼 이듬해 종신 단원이 됐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는 16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해 올해 1월 플루트 수석 활동을 시작했고, 6월 악단 심사위원회 만장일치로 종신 자격을 얻었다.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의 종신은 65세 정년 보장을 의미하지만 미국 오케스트라는 이 한계마저 없다.

최근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김유빈은 "이제야 정치·사회 등 음악 세계 바깥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변변한 취미 하나 없을 정도로 음악만 바라보고 쉼 없이 달려온 그. 샌프란시스코 종신 자격 결정을 앞두고는 압박감도 심했다. 명문 오케스트라는 통상 1, 2년간의 연수 기간을 거쳐 종신 임용 여부를 결정하는데 그는 이례적으로 입단 6개월 만에 종신 수석이 됐다. '연수 6개월'은 입단 계약 때 김유빈이 내건 조건이었다. 그는 "안정된 독일 생활을 포기하는 선택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 위험 부담은 감수해야 했다"고 말했다.

김유빈은 지난해 12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무대 위에서 펑펑 울었다. 독일 생활을 접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그를 움직인 것은 2020~2021 시즌부터 음악감독으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를 이끄는 핀란드 출신 작곡가 겸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이었다. 김유빈에게 전화로 입단을 제안한 살로넨은 2024~2025 시즌을 끝으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를 떠난다. 든든한 지지자가 사라지는 공백이 클 법도 하지만 김유빈은 "그런 것까지 생각하면서 음악을 하지 않는다"며 "살로넨 퇴임 전 협주곡 연주는 꼭 한번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유빈은 이달부터 샌프란시스코 음악원(SFCM) 교수로 강의도 한다.

"플루트 레퍼토리 확장에 보탬 되고파"

김유빈은 프랑스 리옹과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에서 학·석사를 졸업하고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다. 2014년 제네바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 2015년 체코 프라하 봄 국제 음악제 콩쿠르 1위에 이어 2022년 독일 ARD 국제음악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플루트 부문에서 우승했다. 한순간의 좌절도 없었을 듯한 경력이지만 그는 "모든 게 쉽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입단 때는 공연 비자 발급이 늦어져 오디션에 참가하지 못할 뻔했다. 비행기 예약 시간을 수차례 놓치고 발을 동동 구르다 악단이 나섰고, 낸시 펠로시 캘리포니아주 하원 의원의 편지까지 받아 준 덕분에 해결됐다.

김유빈은 지난달 '연주자의 명함'과 같은 첫 정식 음반 '포엠'(소니 클래시컬)을 내고 전국 리사이틀 투어를 마쳤다. 이달 13일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영국 고음악 거장인 지휘자 리처드 이가가 이끄는 서울시향과 모차르트 플루트 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20대에 큰 성취를 이룬 음악가에게 목표가 남아 있을까. 김유빈은 내년 6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있을 작곡가 배동진의 플루트 협주곡 세계 초연 일정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작곡가들이 나를 위해 플루트곡을 써 주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연주자로 성장하고 싶다. 그래서 플루트 레퍼토리 확장에 보탬이 되고 싶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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