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법 '사전 지정' 못 넣은 공정위... '사후 추정'으로 선회

입력
20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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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애플·네이버 등만 지배적 플랫폼 될 듯
업계 반발에 2월 무기한 연기... '사전 지정' 포기
시장 점유율·이용자 수·매출액 고려 '사후 추정'
매출 4조 원 미만은 제외...쿠팡·배민 등은 빠질 듯
플랫폼 정산 기한 30일 내로 줄여...9월 중 발표

정부가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 추진 의사를 밝힌 지 약 9개월 만에 초안을 발표했다. 당초 플랫폼법의 핵심 뼈대였던 ‘사전 지정’이 빠진 대신 ‘사후 추정’과 ‘임시중지명령’ 등으로 플랫폼 관련 사건을 신속하게 규제하겠다는 것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입장이다. 하지만 기업 반발에 정부가 한발 물러선 데다 규제의 실효성마저 잃게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구글·애플·네이버 등 ‘지배적 플랫폼’ 될 듯… 쿠팡·배민 빠지나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변화 속도가 빠른 플랫폼 시장의 독과점 폐해에 신속·효과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조치로서 유통 플랫폼에 대한 판매대금 정산 등 관련 법적 규율을 통해 입점업체를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입법을 조속히 추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추진하는 법 개정은 두 방향이다. 플랫폼 시장 내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고, 플랫폼 내 갑을 문제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으로 다루겠다는 것이다. 당초 공정위는 2월 중 플랫폼법 제정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특히 법안의 기틀이었던 ‘지배적 사업자 사전 지정’이 업계 반발에 의해 빠지고 ‘사후 추정’ 방식이 됐다. 4대 반(反)경쟁행위(△자사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대우 요구)를 저지른 플랫폼 가운데 시장 독점력을 갖춘 곳을 지배적 사업자로 사후 추정해 위법성 입증 책임을 물겠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정한 플랫폼 독과점 관련 규율 분야는 △중개 △검색 △동영상 △SNS △운영체제 △광고 6개다. 규제 대상은 ‘단일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60% 이상이고 이용자 수가 1,000만 명 이상인 경우’이거나, ‘3개 이하 회사의 시장 점유율 합이 85% 이상이고 각 사별 이용자 수가 2,000만 명 이상인 경우’다. 다만 이에 해당되더라도 계열회사를 포함해 플랫폼 관련 연 매출액이 4조 원 미만인 기업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업계에선 쿠팡과 배달의 민족 등은 규제 대상에서 빠지되, 네이버와 카카오 구글, 애플, 메타 등이 규제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스스로 세운 ‘사전 지정’ 필요 논리 무너뜨려

공정위 스스로 ‘사전 지정’을 포기하면서, 규제 실효성을 떨어트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공정위는 당초 1월 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한번 (규제가) 늦어진 시장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며 규제가 늦어 잠식당한 원스토어와 멜론 등 우리나라 기업 사례를 언급했다. 플랫폼 시장 특성상 시장획정과 부당한 행위 등을 입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사전 지정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업계 반발에 공정위는 결국 사전 지정을 포기하고, 4대 반칙 행위를 한 기업 중 시장 지배적 사업자 여부를 ‘사후 추정’해 규제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택했다. 신속하게 규제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실태조사를 시행해 사후 추정 요건에 맞는 사업자를 대략적으로 파악해 시장 획정 절차를 줄이는 방식이다. 이 플랫폼에 적용되는 과징금 상한도 매출의 8%까지로 당초 계획보다 2%포인트 높이고,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임시중지명령도 내리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대안이 ‘사전 지정’ 효과를 대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후 추정 역시 기업이 선정 기준 등에 대해 반발해 조사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고, 임시중지명령 제도는 기존 전자상거래법 등에도 있지만, 발효 요건이 까다로워 8년간 시행된 경우는 2건뿐이었다.

티메프 대책 9월 중 확정 발표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 방지를 위해 대규모유통업법도 개정한다. 공정위는 입점업체가 플랫폼으로부터 판매 대금을 제때 정산받지 못하는 문제를 막기 위해 △법 적용 대상 △정산 기한 △대금 별도 관리를 규제할 계획이다. 정산 기한은 ①구매 확정일(청약 철회 기한 만료일)로부터 10~20일 이내, 혹은 ②월 판매 마감일로부터 30일 이내 중에서 결정할 계획이다. 대금은 ①판매 대금의 100%를 별도 관리하거나 ②50%를 별도 관리하는 안을 고려 중이다.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은 이달 중 공청회를 통해 최종안이 확정될 예정이다.

세종=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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