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좋지 않은데 서울 집값은 왜 오를까

입력
2024.09.10 04:30
25면
<21>부동산 가격 오르는 두 가지 이유
서울 중위 주택 가격 6억9000만 원
"소득 수준 비해 대단히 높은 수준 아니다"
수출 증가로 임금 동반 상승하면서 구매력↑

편집자주

국내 대표 이코노미스트인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가 세계 경제의 흐름과 현안을 진단하는 ‘홍춘욱의 경제 지평선’을 2주에 1회 연재합니다.



최근 발표된 KB부동산의 주택 매매가격 통계에 따르면, 2024년 8월 서울 아파트 가격은 0.89%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승에 호들갑 떤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한 달 동안 이 정도 오른 것이니 1년 상승률로 환산하면 10%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출렁이는 부동산 시장은 다른 지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올해 1~8월 전국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30만1,395건, 거래액은 139조3,445억 원으로 집계됐다. 거래량은 지난해 연간 거래량(29만8,084건)을 넘어섰고, 거래액은 지난해 연간 거래총액(151조7,508억 원)의 약 92%에 달한다.

그렇지만 모든 부동산 시장이 꿈틀대는 건 아니다. 지난달 전국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0.12%에 그쳤다. 인천을 제외한 5대 광역시 아파트 가격은 오히려 0.20%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2분기 한국 경제 성장률이 역성장(-0.2%)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최근 한 콘퍼런스에서 만난 주택시장 전문가는 유동성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윤석열 정부가 신생아 특례대출 등 각종 특혜 대출을 풀어 주택가격의 상승을 부추겼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볼 수 있을까.



위의 <그림>은 2004년 이후 예금은행의 대출 증가율과 주택가격 상승률의 관계를 보여 준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출과 주택가격 사이에 뚜렷한 관계를 찾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2000년대 중반처럼 은행대출과 주택가격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시기에도, 집값이 오른 후 뒤늦게 대출이 늘어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은행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으려 들기 때문이다. 주택가격이 상승하면 주택담보대출 시 담보가치가 높아지고, 신규 연체 발생 가능성도 낮아진다. 이럴 때 대출을 늘리는 건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더 나아가 최근 은행 등 금융기관의 대출은 매우 낮은 수준에서 억제된 것으로 나타난다. 2024년 1~7월 기준 가계대출은 단 13.0조 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필자가 이 대목에서 ‘단’이라는 관형사를 붙인 이유는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대출도 늘어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절대 금액이 경제의 현실을 잘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소할 목적으로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대출의 비중을 측정하면, 2022년 2분기 80.2%에서 2024년 2분기 71.6%로 줄어든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경제의 외형 규모는 커졌으나 가계대출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으며, 2024년 접어들어서는 더욱 감소폭이 빨라진 것으로 봐야 한다. 이 영향으로 내수경기는 끝없이 악화되고 있다. 가계 연체율도 급격히 상승하는 중이다. 상황이 이런데, 유동성이 늘어나 주택가격이 오른다는 주장이 타당할까.



내수경기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아파트 가격이 상승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첫 번째 요인은 소득에 비교한 주택가격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 아파트 값이 그렇게 올랐는데 무슨 소리냐”라고 반문하는 독자들이 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한강 인근 국민평형 아파트 값이 50억 원을 넘어서더라도 서울의 중위 주택가격은 6억9,000만 원 수준이라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1년 전이었던 2023년 8월 서울의 중위 주택가격이 6억9,500만 원이었으니, 서울 주택가격은 오히려 빠진 셈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서울에 100채의 집이 있을 때 50번째로 가격이 비싼 주택, 즉 중위 주택을 기준으로 계산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서울에는 아파트뿐 아니라, 단독주택과 빌라가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이제 서울의 아파트 실거래 가격을 기준으로 주택가격의 흐름을 살펴보자. 아래 <그림>은 2011년 이후 서울지역의 아파트 실거래 가격과 전국 기준 시간당 임금의 흐름을 보여 준다. 한눈에 알 수 있듯, 주택가격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힘은 소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12~2015년처럼, 주택가격이 소득 수준을 꾸준히 밑돌면 결국 매수 우위의 시장이 펼쳐진다. 반대로 2020~2022년처럼, 주택가격이 소득 수준을 크게 넘어서면 매수세가 점점 더 약화될 것이다.



2024년 2분기 기준으로 측정해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이 소득 수준에 비해 대단히 높은 수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가계대출이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면서 내수경기가 망가졌지만, 근로자 임금 상승세가 지속된 것이 최근 아파트 가격 상승을 유발했음을 알 수 있다.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늘어나고 내수경기가 악화됐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들의 임금이 상승한 이유는 수출 호조에 있다. 반도체와 조선 그리고 자동차 등 고용규모가 큰 주력 산업의 수출이 크게 늘어나는 가운데, 임금 인상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SK하이닉스는 2024년 임금 인상률을 5.7%로 결정한 바 있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실질임금 상승률은 3.7%에 이르는 셈이다. 특히 임금 상승뿐 아니라, 의료비 지원 한도를 기존 4,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상향하고 출산 축하금도 지원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소득 전망이 개선될 때, 주거 여건을 개선하려는 욕구가 분출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만의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은행이 발간한 흥미로운 자료 ‘경제 지표의 그늘, 체감되지 않는 숫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주요 상장기업의 잉여현금흐름이 다시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잉여현금흐름은 영업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현금흐름에서 고정자산 투자액을 뺀 것으로, 기업들의 여유 현금을 나타내는 지표다. 잉여현금흐름이 계속 플러스를 기록한다는 것은 기업들이 투자하고도 남는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수출 흐름의 지속성이다. 앞으로도 수출이 잘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근로자들의 임금을 계속 올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주목해야 할 통계가 미국 주택가격이다.



<그림>에 나타난 것처럼, 한국의 수출은 미국 주택경기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집값이 오르는 등 선진국 경기 여건이 개선될 때, 자동차와 전자제품 수요도 늘어나는 탓이다. 따라서 한국 주택경기를 좌우하는 두 번째 요소는 미국 주택가격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주택가격이 상승하면서 강력한 소비 붐이 발생할 때, 그때 한국 수출이 잘되고 근로자 임금도 인상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분석만 놓고 보면, 한국 주택시장의 미래는 꽤 밝은 것으로 판단된다. 캐나다와 유럽중앙은행의 뒤를 이어 미국 중앙은행도 금리 인하 흐름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강세 요인이다. 여기에 만에 하나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고 해도, 그가 부동산시장에 상대적으로 친화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주택시장에 경기 여건 이외에도 중요한 검토 요인들이 존재한다는 점도 잊지 말자. 예를 들어 미국 주택시장의 강세가 이어지고 한국 근로자들의 임금이 인상된다고 하더라도 어떤 지역 혹은 어떤 평형의 아파트를 사야 하는 문제에 도달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경제 전체의 주택 수요가 강하다고 해도, 미분양 물량이 끝없이 쌓여 있는 지역의 탄력은 약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세상에 쉬운 것은 없다. 부동산시장이 상대적으로 투자가 용이하다고 해도, 세부적인 내용에 접어들 때에는 많은 애로 사항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디 많은 독자들이 이 글을 통해 변화된 한국 주택시장의 여건을 파악하고 투자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