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대 증원 발표→의료계 집단 반발→정치권 개입'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로 촉발된 의정갈등 전개 과정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전공의 파업 사태와 닮아 있다. 4년 전과 달라진 건 여야가 뒤바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주장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국민의힘이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기득권 지키기'라고 비판한 것은 4년 전 여당이었던 민주당 모습을 연상케 한다. 반면 야당이 된 민주당이 이번 사태 해결책으로 내세운 윤석열 대통령 사과와 복지부 장·차관 경질 등 책임론은 4년 전 야당이었던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에서 들을 수 있는 얘기였다.
4년 전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2020년 3월 4·15 총선 공약에 의대 증원을 담았다. 같은 해 7월 당정 협의에서 2022학년도부터 10년간 의대 정원을 한시 확대해 의사 인력을 총 4,000명 늘리고, 공공의대를 신설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개원의와 전공의가 반발하며 집단행동에 나서자, 민주당은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당시 이해찬 대표는 "의사와 의대생의 집단행동에 국민의 건강과 생명의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했고, 의원들도 가세했다. 민형배 의원은 "반사회적 난동"이라며 "응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고, 김경협 의원은 "자신들의 호화 철밥통을 지키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의정갈등을 대하는 민주당은 정부·여당 비판에 집중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9일 정부·여당을 향해 "자존심보다는 국민 생명을 지킨다는 자세로 임해달라"면서 "국민들이 생명의 위협을 겪지 않도록 의사들이 하루빨리 병원에 복귀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달라진 건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4년 야당 시절 의대 정원 확대에 시큰둥했다. 당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문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 "정부가 정책을 힘과 의지만 갖고 해서 성공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정부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이 문제를 조속히 풀고 양보하길 강하게 권고한다"고 가세했다.
의료공백 사태가 길어지며 부담을 느낀 집권 세력이 의료계를 향해 자세를 낮추기 시작하는 것은 동일한 패턴이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앞서 예고했던 '원칙 대응' 카드를 내려놓고 의료계를 향해 적극적으로 화해의 손짓을 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와 맞물린 사태 장기화에 부담을 느낀 민주당 역시 그해 9월 의료계에 사실상 백기 투항했다. 한정애 당시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최대집 의협 회장과 만나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은 코로나19 확산이 안정화될 때까지 관련 논의를 중단하겠다'는 합의문에 서명했다. 다만 합의문에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증원 등을 원점에서 재논의한다'는 내용을 담아 불씨는 남겼다. 윤 정부는 지난해 1월부터 의대 증원을 추진했는데 의협에 의대 증원 논의 재개를 요구하며 근거로 든 것이 '코로나19 이후 의대 증원을 재논의한다'는 4년 전 합의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