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시절 '시주함 도둑' 놓아준 스님…27년 만에 날아온 편지

입력
2024.09.09 15:30
시주함에 손편지와 현금 200만 원 남겨
"27년 전 절도 걸렸지만 스님이 보내줘
그날 이후 한 번도 남의 것 탐한 적 없다"

최근 경남 양산시 통도사 자장암 시주함에서 편지 한 통과 함께 5만 원짜리 현금 200만 원이 든 봉투가 발견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자장암 관계자는 지난달 20일 시주함을 열다가 두툼한 현금 봉투와 손편지를 발견했다. 이름을 알리지 않은 작성자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가 닥쳤던 1997년, 이곳에서 시주함을 훔친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어린 시절 생각이 없었다. 27년 전에 여기 자장암에서 시주함을 들고 산으로 가 통에서 돈을 빼갔다. 약 3만 원 정도로 기억난다"고 했다.

그는 "그리고 며칠 뒤 또 돈을 훔치러 갔는데 한 스님이 제 어깨를 잡고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고개를 좌우로 저으셨다. 그날 아무 일도 없었고 집으로 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날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남의 것을 탐한 적 없다. 일도 열심히 하고 잘 살고 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스님이 주문을 넣어서 착해진 것 같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작성자는 "그동안 못 와서 죄송하다. 잠시 빌렸다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다"며 "곧 아기가 태어날 것 같은데 아기한테 당당하고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날 스님 너무 감사했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라고 손편지에 마음을 꾹꾹 눌러 썼다.

참회한 소년에 "좋은 일 가득하기를"

당시 편지 작성자의 어깨를 잡았던 스님은 통도사 주지를 역임하고 현재 자장암에 살고 있는 현문 스님이다. 스님과 함께 사연을 접한 통도사 영축문화재단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워낙 오래전 일이라 스님께서 소년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시지만, 초·중학생 정도의 어린 소년이었던 걸로 알고 계신다"며 "IMF 외환 위기로 어려운 시기라 시주함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고 했다.

당시엔 폐쇄회로(CC)TV도 없었기에 작은 시주함을 그대로 들고 가 자물쇠를 부수고 돈만 훔쳐가는 일들이 자주 있었다. 얼마나 시주함을 훔쳐갔는지 나중엔 돈만 가져가라고 통을 열어놓을 정도였다. 하지만 스님은 "워낙 어려운 살림에 다들 힘든 시절이었으니 (절도범들도) 붙잡지 않고 그냥 보내줬다"고 했다. 편지를 쓴 소년도 그렇게 놓여난 사람 중 하나였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편지 작성자를 향해 "태어날 아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멋진 아버지가 될 것 같다"며 "앞날에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바란다"고 축원했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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