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잘못 가져갔다고 절도 혐의 인정… 헌재 "헷갈릴 만해" 기소유예 취소

입력
2024.09.08 14:02
"유사한 우산, 기억력 저하 진료 전력"

남의 우산을 잘못 가져간 혐의로, 검찰로부터 유죄를 전제로 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사람이 헌법재판소의 구제 절차를 통해 혐의를 완전히 벗었다.

헌재는 절도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모씨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을 내렸다고 8일 밝혔다.

전씨는 2022년 8월 9일 서울 강남구의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다른 사람의 우산을 가져갔다. 문제의 우산은 식당 우산꽂이에 있던 전씨의 우산과 비슷한 검은색 장우산이었지만, 벤츠 마크가 새겨진 20만 원 상당의 고급 우산이었다. 식당 폐쇄회로(CC)TV에는 전씨가 처음엔 자기 우산을 꺼내 살펴보다가 다시 꽂은 뒤, 벤츠 우산을 뽑아 나가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를 근거로 경찰은 전씨를 송치했고, 검찰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는 혐의는 인정하되, 사정을 참작해 피의자를 재판에는 넘기지 않는 처분이다. 전씨는 "내 우산으로 착각해 가져갔을 뿐 절도의 고의는 없었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수사기록만으로는 절도의 고의성을 단정하기 어렵다"며 기소유예 취소를 결정했다. 헌재는 "주거지 바로 앞에 있는 식당이었고, 전씨가 우산을 찾을 때는 이미 일행이 신용카드로 결제를 마친 상황이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산을 절도했다고 보기에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고령인 전씨가 기억력 저하로 대학병원에서 검사받은 적 있는 점, CCTV만으로 전씨가 우산의 '벤츠' 마크를 발견할 수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점 등도 근거가 됐다. 헌재는 "청구인과 피해자의 우산은 모두 검은색 장우산으로 그 색상과 크기가 유사하다"며 "청구인의 연령 및 건강 상태를 고려하면, 우산을 착각했다는 주장이 비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최동순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