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예방을 위한 내면의 힘

입력
2024.09.15 08:40
[헬스 프리즘] 박상흠 순천향대 천안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진료하다가 환자에게서 발병 관련 사연을 들을 때마다 ‘내면의 힘이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매번 안타깝다.

질병은 환경 요인 및 유전이 상호 작용으로 발생한다. 체력을 포함한 개인적인 요소가 발병의 변곡점으로 작용한다. 발병 요인은 외부 요인(환경)과 내부 요인(유전, 체력, 사연 해석 방식 등)으로 크게 나뉜다.

병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내부 요인은 자극이 반복되면 손상되는 몸 때문이다. 생활하면서 술과 폭식, 담배, 미세 먼지 등 몸을 자극하는 물질이 입이나 코를 통해 계속 몸 속으로 유입되고 또한 스트레스 호르몬 등이 내부에서 만들어진다.

질병 예방의 관점에서 유의할 점은 인체 자극의 외부 및 내부 물질은 물질이기에 스스로 이동하거나 자연적으로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활하면서 마주하는 환경 즉 외부 요인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대응한 데 따른 결과다.

환경이라는 외부 요인은 미세 먼지·대기오염·자연재해(폭염, 홍수 등)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살면서 만나는 사람과 그로 인해 생긴 사연이다. ‘사랑과 전쟁’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미생’ ‘애로 부부’ ‘토지’ ‘글로리아’ 등과 같은 드라마에는 살아온 배경·가치관·취미·목표 등이 서로 다른 사람이 섞여 살면서 이전에 생겼거나 현재 생겨나고 앞으로 생길 사연이 수두룩하다. 삶은 학교나 직장 생활, 자영업, 결혼, 출산, 퇴직 등 통상적 사연이 대나무 마디처럼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런데 인생 마디의 사이에서 소나기처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연을 마주하는데, 이 또한 대부분 사람들과 얽힘에서 발생된다. 그 과정에서 간혹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정의한 간사하며 조그만 이익에도 신의를 저버리고 이기적이며 교활하고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을 만난다.

혹은 맹자가 지적한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는, 즉 거짓말하면서 조금도 얼굴 표정 변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못 느끼거나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학부를 나왔지만 옳고 그름(是非之心)이 없는 동물화(animalization)된 사람을 만난다. 혹은 본인 나름의 방식으로 남다른 성공을 거둔 뒤 ‘내가 최고고 옳다’는 ‘아만(我慢)이즘’에 휩싸여 상대방에 대한 공감과 경청이 없는 보스를 만난다.

삶에는 어느 현인의 말씀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고해로 느끼게 되는 다양한 사람과 사연이 기다리고 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런 상황은 피할 수 없다. 다만 질병 예방 관점에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다음으로 연계되는 과정은 개인마다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마주한 사연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집안의 가훈, 학교의 가르침, 조직의 운영 규칙, 선배의 조언 혹은 자신의 직·간접 경험 등을 통해 각자의 ‘분·분·평·판(분별·분석·평가·판단)’ 기준을 갖추게 된다. 행여 마주한 사연을 분·분·평·판 후 분노, 불안, 초조, 두려움 등 부정 감정이 발생되면 곧바로 적응(일명 생존) 반응성 습관 고리(사연→감정→반복 행동→보상)가 자동적으로 작동되면서 인체 자극 물질이 유입·생성된다. 이런 상황이 장기간 반복·지속되면 아이러니하게도 생존이 아니라 발병 위험이 커진다.

질병을 예방하려면 삶 중 마주하는 사연이 발병의 연결 고리로 진행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즉, 발병 시발점인 사연을 지혜롭게 해석하고 대응하는 내면의 힘이 요구된다. 마주하는 상황에 부정 감정 발생을 가능한 한 최소·단기화하고 담담히 버텨내는 힘이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