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6일 한일정상회담을 갖고 내년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한일관계 도약을 약속했다. 제3국에서 자국민을 철수시키는 긴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서로 협력하는 한편, 양국의 상호 출입국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다만 껄끄러운 쟁점인 과거사 문제는 아예 회담에서 다루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이달 퇴임을 앞둔 기시다 총리와 용산 대통령실에서 12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 복원된 한일·한미일 협력의 지속적인 발전을 주로 논의했다.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우리 두 사람의 견고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일관계는 크게 개선됐다”며 “총리님과 함께 일궈온 성과들은 제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일관계 개선은 역사적인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한미일 협력을 체계화하고 심화시키는 결정적인 토대가 됐다”면서 “우리 함께 힘을 모은다면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한일관계가 한 단계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 한일, 한미일 간 협력을 계속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저와 기시다 총리가 쌓아온 양국 협력의 긍정적 모멘텀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중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기시다 총리는 “크게 도약한 양국 관계의 과실을 양국 국민이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양국의 긴밀한 공조는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필수적이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국제사회 전체에 있어서도 큰 이익”이라고 화답했다.
회담에서 양국은 '재외국민 보호협력' 각서를 체결했다. 지난해 수단 쿠데타와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당시 한일 국민이 현장을 신속하게 빠져나왔던 협력 사례를 제도화하기 위한 조치다. 아울러 인적 교류 규모가 매년 1,000만 명에 달하는 만큼, 자국 공항에서 출입국 심사를 동시에 받고 상대국에 도착하면 간단한 신원 확인만 거쳐 공항을 빠져 나가도록 하는 ‘출입국 간소화’ 방안을 적극 모색하기로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출입국 간소화를 위해) 일본 법무성이 먼저 실무 검토에 착수했고 우리도 일본과의 협의에 응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도발에 맞선 공조 강화와 윤 대통령의 ‘8·15 통일 독트린’에 대한 일본의 지지를 재확인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도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지지한 바 있다”며 “(8·15 통일 독트린도) 이 목표를 제시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과정에서 드러난 양국의 불협화음과 과거사 문제 등은 논의하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과 관련해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말씀드렸다”, “저 자신은 당시 가혹한 환경 아래 많은 분들이 대단히 고통스럽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의 발언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일본 극보수진영의 반발을 고려해 발언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에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들이 남아있다"며 "더 밝은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 지속될 수 있도록 양측 모두가 전향적인 자세로 함께 노력해 나아가기를 기대한다"고 말을 아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사도광산 문제는 이미 7월에 일단락이 되었기 때문에 정상 간에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