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전 이어 김민재-붉은악마 갈등까지... '분위기 바닥' 홍명보호, 오만 원정 어쩌나

입력
2024.09.06 17:35

우여곡절 끝에 출항한 홍명보호의 분위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전력이 한참 떨어지는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졸전을 펼친 데 이어 김민재(바이에른 뮌헨)와 축구 대표팀 서포터스 ‘붉은악마’가 갈등을 빚는 등 경기 외적인 소란까지 일고 있어서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FIFA 랭킹 23위)은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팔레스타인(96위)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B조 1차전 홈경기에서 0-0으로 비겼다.

한국은 경기 내내 답답한 빌드업과 불안정한 실책을 남발하면서 FIFA 랭킹이 70계단 이상 차이 나는 팔레스타인과 안방에서 무승부를 거뒀다. 이날 경기에는 손흥민(토트넘), 황희찬(울버햄프턴), 김민재,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등 해외파 선수들도 대거 투입됐지만 소용이 없었다.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자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엄밀히 말해 야유는 경기 시작 전부터 계속됐다. 이날 10년 만에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첫 경기에 나선 홍명보 감독과 그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절차를 무시한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축구협회장을 겨냥한 야유였다.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인 선수가 있었다. 경기 직후 김민재는 축구 대표팀 서포터스인 ‘붉은악마’가 모여있는 골대 뒤편 응원석을 향해 걸어갔다. 양손을 흔들며 야유를 자제해달라고 요구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이어 김민재는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는 “부탁드릴게요"라고 외쳤지만 야유는 멈추지 않았다. 김민재는 자신의 요구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느낀 듯 관중석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민재는 모든 선수들이 주장 손흥민을 중심으로 모여 팬들에게 인사를 할 때 손흥민의 신호에도 인사를 하지 않는 모습이 현장 영상 등에 담겼다.

김민재는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과 만나 “일부 팬들이 우리가 지기를 바라고 응원하는게 아쉬워서 그랬다. ‘그냥 선수들을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며 "우리가 (경기) 시작부터 못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경기 양상이 드러나기 전인 초반부터 팬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야유에 대한 아쉬움이 드러난 걸로 해석된다.

김민재의 발언에 붉은악마는 6일 공식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즉각 반박했다. 붉은악마는 "붉은악마가 탄생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선수들과 모든 순간들을 함께했고 어떠한 순간에도 '못하길 바라고', '지기를 바라고' 응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붉은악마는 경기 직후 김민재와 홈 팬이 대면한 당시 상황에 대해 "김민재가 홈 응원석 쪽으로 와서 '좋은 응원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며 "선수와 관중 간 설전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간절히 승리를 바랐던 김민재가 좋은 결과가 안 나온 아쉬움에, 그리고 오해에 그랬던 것 같다. 단, 표현의 방법과 장소는 매우 아쉽다"고 지적했다.

붉은악마는 경기 전부터 나온 한국 축구를 향한 야유와 항의가 선수가 아닌 대한축구협회와 정몽규 회장, 홍명보 대표팀 감독을 향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붉은악마는 "지난 몇 달간 공정과 상식이 없는 불통의 대한축구협회 행위에 대해 (항의의) 목소리를 가장 잘 내고, 이목을 끌 수 있는 곳이 경기장이라고 생각했다"며 "거짓으로 일관하는 협회와 스스로 본인의 신념을 저버린 감독에 대한 항의와 야유였다"고 해명했다. 이어 "진정 선수들과 한국 국민을 생각한다면 협회는 이에 응답해야 한다"고 결단을 촉구했다.

팀 분위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홍명보호는 10일 오만(76위)과 3차예선 2차전 원정 경기를 치른다. 오만은 2003년 10월 아시안컵 2차 예선 원정 경기에서 한국에 1 대 3 참패를 안긴 이른바 ‘오만 쇼크’를 안긴 팀이다.

김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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