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라서 겁이 없었어요. 철부지였던 때라 무서운 걸 몰라 아마추어처럼 밀고 나가며 만든 영화예요."
1970~80년대 한국 영화를 대표했던 이장호(79) 감독이 영화 '별들의 고향'(1974)으로 연출 데뷔한 지 50주년을 맞아 지난 시간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6일 오전 충북 제천시 제천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이장호 감독 데뷔 50주년 기념 스페셜 토크'에서였다. 행사는 제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마련했다.
'별들의 고향'은 1970년대 청춘 문화를 상징하는 영화다. 최인호(1945~2013)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당시 서울 국도극장에서만 43만 명을 모으며 최고 흥행작 자리에 올랐다. 한 젊은 여성의 사랑과 죽음을 그린 작품으로 빠르게 도시화하던 당대 한국 사회상이 반영돼 있다. 이 감독은 28세에 '별들의 고향'을 내놓으며 충무로 차세대 감독으로 급부상했다.
이 감독은 최 작가와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함께 다닌 친구다. 그는 베스트셀러 '별들의 고향'의 영화화 판권을 확보하게 된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최 작가는 당초 이 감독에게 판권을 주기로 약속했으나 출판사의 동의가 필요했다. 이 감독은 "(돈으로 최 작가를 움직이게 하려고) 동생 이영호(훗날 배우가 됨)에게 대학 한 학기 등록금을 받아 최 작가의 아내에게 보냈다"고 돌아봤다. 동생에게는 "한 학기 휴학을 하는 대신 내가 잘되면 하고 싶은 배우가 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도 말했다. "인호가 밤에 만취해서 전화를 했어요. '영화는 네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아서 만들어 보라'고 하더군요."
이 감독은 데뷔 전 당대 충무로 최고 실력자였던 신상옥(1926~2006) 감독 연출부원이었다. 이 감독의 부친이 아들을 배우로 만들기 위해 이 감독을 평소 친분이 있던 신 감독에게 소개하면서 두 감독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 감독은 "카리스마 있고 잘생긴 신 감독 앞에 있으니 '배우 하고 싶다'는 말이 쏙 들어갔다"며 "'뭐 하고 싶냐'는 물음에 '감독을 하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고 밝혔다. 그렇게 신 감독 연출부에 들어가 8년을 수련했다. 이 감독은 "'별들의 고향' 판권을 확보했다는 소문이 돌자 신 감독님이 저를 불러 촬영감독을 추천해 줬다"며 "속으로 '아, 잘못 걸렸구나' 싶었고, 내가 연출하는 게 아니게 되겠다는 생각에 바로 라면 박스에 짐을 싸서 신필름(신 감독 영화사)을 나왔다"고도 밝혔다.
이 감독은 호기롭게 영화 제작에 들어갔으나 "촬영 일을 앞두자 덜컥 겁이 났다"고 했다. 그는 "촬영 개시 전날 콘티(카메라 위치와 구도 등에 대한 계획표)를 작성하려는 데 진척이 없었다"며 "다음 날을 위해 잠이라도 잘 자자는 판단에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수북이 쌓여 있어 당초 촬영하려 했던 장면 대신 주인공 경아(안인숙)가 눈길을 걷다가 죽는 영화 마지막 장면을 촬영했다"며 '별들의 고향' 명장면이 탄생하게 된 뒷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는 "그때부터 콘티 없이 현장 분위기를 보고 즉석으로 연출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저는 '천수답 연출'을 한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팔순이 눈앞이나 영화 연출에 대한 의지는 여전히 강하다. 그는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라며 "젊은 시절 그들을 저평가하고 폄훼한 것에 대한 반성 차원"이라고 말했다.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기도 해요. 제가 살아오면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을 노래와 춤으로 풀어 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