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없이 고양이나 키우는 여자들(childless cat ladies)이 자기 인생처럼 국가를 비참하게 만들려 한다.”
미국 공화당 소속 JD 밴스 연방 상원의원(오하이오)이 ‘캣 레이디’ 발언을 한 것은 3년 전 보수 방송 폭스뉴스 인터뷰에서였다. 11월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나서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대표 격으로 겨냥한 저 주장은 7월 그가 자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지명되며 소환됐고, 수두룩한 독신 여성의 공분을 샀다. 민주당은 그를 ‘괴상한(weird) 사람’이라고 놀렸다. 부메랑을 맞은 셈이다.
그러나 밴스 의원만 유별난 것은 아니다. 캣 레이디를 향한 혐오감(포비아) 또는 공포증 표출은 보수 진영에서 드물지 않은 현상이다. 보수 성향 평론가 애슐리 세인트 클레어 역시 지난해 폭스뉴스에 출연해 자녀 없는 미국인을 “가족을 갖는 대신 밤새 술 마시고 비욘세(가수) 콘서트에나 가고 싶어 하는 쾌락 추구자”로 묘사했다. 다자녀로도 유명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올 5월 한 대담에서 “지속적인 출산율 급락은 문명사적 위험”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염려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먼저 꼽히는 것은 전근대 가부장제의 흔적이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제시카 그로스는 지난달 7일 글에서 대가족 시대 여성이 흔히 피력하던 출산의 기쁨이나 충만한 모성을 억압·강요의 자기 정당화 기제로 해석했다. △신뢰할 만한 피임법의 부재 △높은 유아 사망률 △부부 강간 개념 미정립 △노처녀·독신녀에 대한 사회적 비난 등의 산물이 다산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미국도 그런 다산 문화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인종주의가 배후에 도사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 많은 자녀를 낳는 유색인종이 백인을 대체하고 결국 백인 문화도 소멸하리라는 음모론 ‘대전환론(The Great Replacement)’의 확산이 캣 레이디 포비아 강화와 시기가 맞물린다는 것이다. 기독교 민족주의를 연구하는 미국 예일대 교수 필립 고르스키는 7월 NYT에 “‘백인 아기가 충분하지 않다’는 얘기가 은밀히 오가는데, 그게 진짜 문제를 드러낸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려움을 우익의 전유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인구가 줄어드는 사회에서는 실제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 조 바이든 행정부 백악관의 경제자문위원회(CEA)는 미국의 최신 출산율이 공개된 5월 무렵 저출생 추세를 대책 없이 놔둘 경우 경제 성장 둔화와 사회 보장 프로그램 약화가 불가피한 만큼 여성 노동 참여를 늘리는 ‘돌봄 경제’ 투자 강화가 시급하다는 요지의 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갈수록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미국인도 마찬가지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기준 1.62명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평균(2022년 기준 1.51명)보다 아직 높기는 하다. 하지만 인구 규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치 2.1명에는 못 미친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다.
다자녀는 언감생심이다. 이제 자녀가 한 명도 없는 50세 미만 성인 미국인 둘 중 하나는 아예 아이 한 명도 낳을 의사가 없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7월 공개한 지난해 8월 50세 미만 무자녀 성인 770명 대상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7%가 “아이를 가질 일이 없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2018년 조사 때는 해당 비율이 37%였다. 5년 만에 10%포인트가 늘어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낳지 않는 이유다. 57%가 “그냥(just) 원치 않는다”고 답했다. 여성은 그 비율이 64%나 됐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충격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근본 배경은 바뀐 세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밀레니얼 세대(29~43세·1981~95년 출생)도 자녀를 갖는 게 더 이상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나스타샤 버그와 레이철 와이즈먼은 최근 펴낸 공동 저작 ‘자녀란 무엇인가’에서 “과거에는 비용을 따지지 않고 출산과 양육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젊은 세대의 경우 자녀를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여러 요소 중 하나쯤으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압력이 줄다 보니 형성되는 게 ‘조건’ 담론이다. 부모가 되려면 재정 형편 등 여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논리다. 뉴욕 브롱크스에 사는 마리아 산체스(32)는 아이를 낳기 전에 지금 직장인 광고대행사에서 승진해 현재 10만 달러(약 1억3,000만 원)인 방과후 미술 교사 남편과의 합산 소득을 두 배로 늘리고 집도 원룸 아파트에서 더 큰 곳으로 옮기고 싶다고 7월 WSJ에 말했다.
기회비용이 수반되는 투자와도 비슷하다. 수도 워싱턴에 사는 정보기술(IT) 직종 종사자 헤더(30)는 연봉이 25만 달러(약 3억3,000만 원) 정도다. 그에게 직접 출산과 양육에 대한 관점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낮은 수준이어도 여섯 자리(10만 달러 이상)를 벌고 HCOL(물가가 비싼 대도시)에 거주하다 보니 주변에서는 왜 내가 아이 갖기를 망설이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급여의 40% 가까이 모아도 집을 사기 힘들고 육아 비용을 대려면 다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삶은 떠올리기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경제적 여유를 누리며 여행이나 다니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물론 출산 거부감에 다른 까닭이 없지는 않다. 기후 위기 비관은 구세대에는 없던 정서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기후변화를 포함한 미래 환경 우려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대답한 50세 미만 무자녀 응답자가 26%나 됐다. 50세 이상의 경우 6%에 불과한 고민이었다. 직업적 성공을 우선시하는 실력주의, 가부장제·인종주의에 대한 반발, 과거 인구 억제 시도의 그림자도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당장 해법이 강구될 수 있는 현실은 경제다. 콜로라도주(州)에 사는 레베카 프레임(29)은 가족을 꾸릴 계획을 다 세웠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자신과 남편 둘 다 직장에서 해고되며 재정 형편이 엉망이 됐다. 그는 지난달 16일 워싱턴포스트에 “아이에게 더 많이 주려면 임신을 미룰 수밖에 없다. 선택권이 박탈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양당 대선 후보 간에는 어느 편 해법이 출산을 주저하는 여성에게 진정한 선택 자유를 제공하는지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 자녀 세액공제 확대는 양측 모두 지지한다. 해리스 부통령은 자녀 1명당 최대 공제액 규모를 현재 2,000달러(약 270만 원)에서 3,600달러(약 480만 원)로 늘리고 특히 자녀가 생후 1년 차인 중산층·저소득 가정에는 6,000달러(약 800만 원)까지 공제해 주자고 제안했다. 밴스 의원은 자녀 1명당 5,000달러(약 660만 원) 공제 아이디어를 내놨다.
기본적으로 공화당은 경제적 보상책(인센티브)을 통해 출산을 독려·견인하는 방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난임 치료를 위한 체외인공수정(IVF·시험관) 시술 비용 전액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결국 돈을 주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낙관적 발상이다. 그러나 지금껏 입법 이력을 보면 의회 공화당은 복지 확대를 위한 재정 지출 허용에 소극적이었다.
민주당은 개인 유인책에만 의존하기보다 제도적 접근으로 사회 여건을 조성해 재생산권(출산 관련 여성 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자는 입장이다. △싼 학자금 △저렴한 주택 △충분한 육아 휴직 △감당할 수 있는 육아 비용 등을 ‘돌봄 경제’로 묶어 추진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돈만 갖고는 저출생 방향을 되돌리기 힘들다는 비관이 토대다.
이민자 유입 장려도 여러 전문가가 제안하는 해법이지만 공화당 팀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명 연장과 교육 수준 상향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인 만큼 저출생 흐름을 받아들이며 시간을 두고 사회를 가족 친화적으로 개조하는 장기 대책을 모색하자는 조언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