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X년 4월, 자율주행 트랙터에 쟁기를 연결해 논갈이 경로를 입력했다. 모니터를 보니 알아서 잘 일하고 있다. 여유가 생겨 스마트폰을 보니 스마트팜 밭작물들도 싱싱하게 자라고 있어 기분이 좋다.'
'203X년 6월, 자동 이앙기로 모내기를 혼자 하루 만에 끝냈다. 허리를 다쳐 수확기를 걱정하는 김씨 할아버지께 자율주행 콤바인을 알려드렸더니 농사가 참 편해졌다고 좋아하신다. 드론으로 제초제 뿌리는 방법도 말씀드려야겠다.'
'203X년 10월, 드디어 수확기다. 빅데이터·인공지능으로 육종한 '(가칭) 으뜸 벼'를 심었더니 병충해가 덜했고 수확량도 20% 늘었다. 새참은 소고기다. 라디오파로 숙성했다더니 2등급도 1등급 못지않네. 이제 위성 정보를 살펴 내년 농사를 준비해야겠다.'
상용화를 코앞에 둔 기술로 구성한 미래 농업인의 가상 일기다. 5일 전북 전주의 농촌진흥청을 찾아 스마트 농업의 가까운 미래를 살펴봤다.
농업생명자원부 표현체 연구동에선 벼와 콩 촬영이 한창이었다. 100종씩 총 600개체가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촬영실을 오갔다. 가시광선·근적외선·형광등 센서를 활용해 특정 환경을 조성, 디지털 육종을 위한 표현체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이다.
표현체와 유전체 정보를 비교하면 각 품종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수집한 정보는 슈퍼컴퓨팅센터에서 슈퍼컴퓨터 1·2호기로 분석, 우수 품종 교배조합 등에 활용할 수 있게 공공·민간에 공유된다.
전통 방식으론 수천 개 개체를 육종가가 키워 일일이 특성을 확인했지만, 디지털 육종으론 원하는 형질의 종자를 찾는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고추 자원 849개 유전변이 분석에 일반 서버는 27개월이 걸리지만, 슈퍼컴퓨터로는 2주면 끝난다.
종자 표현체 예측 정확도는 현재 60%까지 올라갔다. 백정호 농업연구사는 "건조할 때 잘 버티거나 병해에 강한 품종을 찾아 육종하는 등 정책적으로 유용한 면이 많다"며 "아프리카 15개국에 전수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고령화, 저출생으로 시름하는 농촌에 기술 발전은 희소식이다. 고령 농업인은 농약 위해성, 근골격계 질환 등에 노출돼 있고 불규칙한 노면 등에서의 농기계 조작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효자 로봇' 개발도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무인 제초로봇은 레이저 센서로 1.5m 내 장애물을 파악, 10㎝ 이내에서 정지한다. 방제로봇은 전기로 충전, 농약이 떨어지면 보충하는 위치까지 스스로 이동한다. 최대 300㎏ 적재 가능한 운반 로봇은 작업자를 따라다니며 수확물을 싣고, 지정한 위치로 이송한다.
경로를 정하면 자율주행하는 트랙터도 나왔다. 다만 100마력대가 1억2,000만~1억3,000만 원 정도다. 이에 트랙터에 위성항법장치(GPS)와 전동형 핸들만 부착하면 자율주행이 되는 1,400만 원대 국산 조향장치를 개발, 지난해 960대 정도 판매됐다.
진흥청은 2027년까지 농업용 로봇 현장 실증 지원사업을 추진한다. 내년부턴 신기술 시범 보급으로 농가 의견을 반영, 개선·보완할 예정이다. 최덕규 밭농업기계화연구팀 실장은 "논농업 기계화율(99.3%)에 비해 밭농업은 63.3% 수준이라 내년 77.5% 달성이 목표"라고 말했다.
올해 5월 연 농업위성센터는 내년 하반기 우주항공청, 산림청과 함께 국내 기술로 독자 개발한 '농림위성'을 쏘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는 현장을 방문해 설문으로 면적별 생산량 등을 조사하지만, 위성을 이용하면 객관적이고 시의성 있는 정보를 생산할 수 있다. 위성영상으로 농작물 생육 상태, 농경지 현황을 분석하는 기술도 개발해왔다. 홍석영 농업위성센터장은 "벼·콩·양파·마늘 등 주요 작물부터 관측 대상을 확대, 농산물 수급 정책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라디오파를 이용한 고기 숙성 기술도 개발됐다. 기존 건식 숙성은 4~6주가 걸리고, 표면은 두꺼워져 먹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풍미를 더해주는 미생물을 투입, 라디오파로 숙성하면 기간은 48시간으로 줄고 육질도 부드러워진다.
권재한 청장은 "신속한 첨단농업기술 개발, 현장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신품종, 노동력 절감을 위한 기계화 등을 더욱 속도감 있게 선보여 농가소득을 향상시킬 수 있는 미래형 농업을 선도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