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한강 이남 최대 전통시장인 대구 서문시장. 칼국수와 떡볶이 등 분식 노점을 비롯해 각종 반찬, 건어물 등 활기차게 영업을 하는 상인들 사이로 높이 3m 가량의 철제 기둥과 녹색 가림막이 눈에 들어왔다. 가림막 너머는 8년 전 대형 화재로 공터로 남겨진 서문시장 4지구. 건물 전체가 화마에 휩싸인 탓에 재건축을 위해 모두 철거됐다. 시민들에겐 익숙한 풍경이 됐지만 이따금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오토바이들이 비정상 복구에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4지구 가벽 부근에서 반찬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공사한다는 말만 수년 째다 보니 보기에도 흉물스럽다"며 "언제쯤 마무리 될지 같은 상인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고 답답해 했다.
2016년 대형 화재로 건물 전체가 소실된 서문시장 4지구 재정비 사업이 8년 째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예정대로라만 내년 초에는 본격적인 착공에 들어가야 하지만, 최근 시공사와 가계약이 무산되면서 일정 추진에 차질이 생겼다. 시공사 선정과 내부 상가 배치 등을 놓고도 조합원 사이 의견이 엇갈리면서 분열 조짐도 뚜렷하다.
9일 대구 중구청과 서문시장4지구 시장정비사업조합 등에 따르면, 조합은 지난달 21일 대의원 회의를 열고 시공사와의 가계약 체결을 보류했다. 조합 측은 "시공사 측이 일부 계약 조건에 변경을 요구한 데다 공사비 상승 등 우려가 있다"며 추석 이후 총회를 열어 조합원 투표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내년 2월 본 계약을 체결한 뒤 곧바로 공사에 들어가야 한다.
일부 조합원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조합에 반발하고 나섰다. 전체 조합원 860여 명중 250여 명 가량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고, 조합 측에 법적 대응도 시사했다. 이신화 서문시장4지구 비대위원장은 "재건축만 기다리다 세상을 등진 조합원이 한둘이 아니다"며 "결정된 사안을 뒤집고 또 재논의한다면 언제 입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데다, 더 이상 다른 곳에서 셋방살이 하기도 지친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북 경산에 본사를 둔 시공사 역시 가계약 무산 직후 조합원들에게 호소문을 발송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시공사 관계자는 "입찰에 참여한 시공사 중 가장 저렴한 공사비를 제안했고, 서문시장과 시공사가 함께 성장하겠다는 간절함으로 임하고 있다"며 "기약 없이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조합 측의 공사비 상승 주장에 대해서도 "추가 금액을 요구한 바 없으며, 설계 변경에 따른 공사계약금액을 '협의'할 수 있다고 언급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비대위 측도 조합 집행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 및 업무상 배임 등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시공사가 계약 무산을 이유로 조합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면 공사 지연과 추가 비용이 발생된다는 이유다. 현재 조합원들은 임시 상가인 베네시움 임대료 및 운영비 등으로 연간 20~30억 원 가량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문시장 4지구는 2016년 11월 30일 오전 2시쯤 전기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해 점포 679곳이 전소하고, 469억 원 상당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화재로 건물의 30% 이상이 무너졌고, 안전진단 결과 E등급이 나와 모두 철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