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국군의날이 빨간날이 된다. 1990년이 마지막 법정 공휴일이었으니 34년 만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3일 국무회의에서 "국가 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우리 국군의 역할과 장병들의 노고를 상기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는 이유를 꺼냈다. 하지만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다 꺼낸 것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문제는 그 카드가 얼마나 먹힐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바로 1년 전엔 10월 2일을 임시 공휴일로 하면서 9월 28일~10월 3일 엿새 동안 연휴가 생겼지만 10월 산업활동 동향의 3대 지표(산업 생산·소비·투자) 모두 마이너스(-)를 찍었다.
이번에도 그나마 수혜를 기대할 수 있는 게 여행업계와 호텔업계 정도다. 특히 올여름 역대급 폭염과 나쁜 날씨 탓에 기대만큼 매출을 올리지 못했던 터라 이들로서는 단 하루의 휴일도 아쉬울 수밖에.
관건은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다. 요즘 웬만한 중견 기업이나 대기업 직장인들은 평소 휴가 쓰는 게 어렵지도 않고 망설이지도 않는다. 그러니 쉬는 날이 하루 더 생겼다고 안 가려던 여행을 떠나고 지갑을 팍팍 열지는 알 수 없다. 더구나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들은 며칠만 쉬는 날이 생겨도 일본이나 동남아로 훌쩍 떠나는 게 다반사다. 과연 내수 경기 살리기에 보탬이 될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이유다.
오히려 직장인들을 상대하는 식당이나 가게는 불똥을 맞게 생겼다. 1일이 빨간날이 되면서 최장 아흐레의 징검다리 연휴가 완성되기라도 하면 사실상 10월의 절반은 허탕 칠 위기에 처한 것. 더구나 올 추석 연휴(14~18일)도 13일, 19일, 20일 휴가를 내면 열흘을 쉴 판이니 한숨만 나온다고들 한다. "장사라는 게 흐름이 있어요. 오래 문을 닫았다가 다시 문을 연다고 해서 스위치를 껐다 켜면 불이 들어오는 것 마냥 원래대로 금방 돌아오질 않습니다." 엊그제 기업들이 많이 모여 있는 서울 시내 식당을 들렀더니 주인은 많이 답답하다 했다.
기계나 설비를 멈출 수 없는 제조업체들이나 대형마트, 백화점 등 유통업체들도 난감하다. 주문 받은 물량을 제때 납품하기 위해서는 공장을 돌려야 하고 쇼핑하러 온 손님들을 맞으려면 직원들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 특히 신세계와 롯데의 아웃렛 매장이 각각 2007년, 2008년 첫 점포 문을 연 이래 사상 처음 추석(17일)날 영업하기로 결정했다. 그만큼 최근 영업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하루라도 더 문을 열어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회사는 일하는 직원들에게 대휴를 주거나 추가로 수당을 지급해야 할 처지다. 이들 회사의 직원들은 빨간날이라고 쉬고 싶어도 꿈도 꾸지 못하고 '자동으로' '부담 없이' 쉬는 큰 회사 직원이나 공무원들과 비교해 상대적 박탈감만 더 느낀다.
이 정도면 굳이 왜 빨간날로 지정했을까 물음표가 생긴다.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중간고사를 치러야 하는 학교는 학사 일정을 다시 짜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말한 '군 사기 진작' '군에 대한 호감 올리기'는 가능할까. 40개월 군 복무한 경험으로 볼 때 국군의날에 수많은 병력을 동원해 시가행진을 하는 대신 군인들을 하루 푹 쉬게 하는 것이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