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시나리오별 북한 핵위협 대응 방안을 처음 논의하고, 11월 미국 대선 전후 북한이 핵실험 등 중대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가 한국 독자 핵무장보다 바람직한 북핵 방어라는 게 여전한 두 나라 정부의 공통 인식이다.
한미 양국 정부는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제5차 한미 외교·국방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고위급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한국 측에서 김홍균 외교부 1차관과 조창래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미국 측에서 보니 젠킨스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 차관 및 카라 아베크롬비 국방부 정책부차관 대행이 각각 참석했다. EDSCG는 한국을 겨냥한 핵공격 위협을 동맹국인 미국이 어떻게 차단하고 해소할지를 논의하는 회의체로, 2018년 2차 회의 후 남북대화 등을 이유로 멈췄다 2022년 9월 윤석열 정부에서 재개됐다.
이날 회의는 북핵 억제·대응 방안 논의에 위협 상황 시나리오를 처음 적용해 본 자리였다.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한국 측은 미국 대선 앞뒤로 북한이 중대한 도발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을 한미 양국이 공유했다고 소개했다. 김 차관은 “여러 가능한 북한의 도발과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협의했다”고 말했고, 조 실장은 “7차 (북한)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이 미국 대선 전에 북한이 고려할 가능성이 있는 전략적 도발”이라고 부연했다.
특히 북한의 핵공격은 용납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는 경우 미국 핵으로 대응하자는 게 한미 양국 정부 입장이냐’는 질문에 김 차관은 공개 언급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분명한 것은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즉각적, 압도적, 결정적 대응에 직면할 것이고, 북한이 핵을 사용하고도 생존 가능한 시나리오는 없다는 게 양국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대답했다. 젠킨스 차관도 “미국이나 동맹·파트너에 대한 북한의 핵공격은 용납될 수 없으며 이는 북한 정권의 종말로 이어질 것임을 재확인했다”고 거들었다.
일각에서 요구가 나오고 있는 한국 자체 핵무장은 아직 양국 정부가 고려하는 선택지가 아니다. 김 차관은 “점증하는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안은 확장억제 강화”라며 “전술핵 재배치를 포함한 핵무장은 현재 한국 정부의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젠킨스 차관도 “우리가 확장억제에 얼마나 헌신하는지 보라”고 했다. 아베크롬비 부차관 대행은 “미국은 전략폭격기와 핵무기 탑재 가능 이중 용도 전투기 등 인도태평양 역내 핵분쟁 억제에 적합한 핵전력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앞서 김 차관은 “오늘 회의에서는 최초로 시나리오에 기반한 토의를 진행했다”며 “위기 상황 시 효과적 억제 및 대응 옵션에 대해 양국 외교·국방 당국이 구체적 시나리오를 갖고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해 상호 이해도를 높이고 향후 논의의 발전적 토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대북 대화 의제를 비핵화로 한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로버트 켑키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는 이날 워싱턴 조지워싱턴대 엘리엇스쿨에서 열린 ‘한미관계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조건 없는 대화의 문은 북한에 여전히 열려 있다”며 안보 이슈뿐 아니라 인권 및 이산가족 상봉, 장애인 지원 등 인도주의적 현안도 의제에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지난해 말 이후 북한산 미사일 65발을 우크라이나를 향해 발사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지난해 9월 이후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컨테이너 1만6,500개 이상 분량의 탄약과 관련 물자를 조달받았다고 전했다. 또 북한이 지원 반대급부로 러시아에 전투기와 지대공 미사일, 장갑차, 탄도미사일 생산 장비와 원료, 첨단 기술 등을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