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오늘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정상회담은 12번째다. 이달 말 퇴임을 앞둔 기시다 총리 입장에선 한일관계 개선을 재임 중 치적으로 꼽을 정도로 이번 고별 방한은 의미 있는 일정일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제3자 변제' 방식의 강제동원 문제 해법을 제시한 이후에도 '물컵의 반잔'을 채우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은 착잡하기만 하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지난해 3월 강제동원 피해자를 비롯해 야당·시민단체 등의 반발에도 제3자 변제 해법을 밀어붙였다. 윤 대통령의 양보에 기시다 총리가 호응하면서 관계 개선의 물꼬가 트였고, 최악의 한일관계로 평가받았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양국 정상이 수시로 만나는 셔틀 외교가 복원됐다. 이를 동력 삼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의 제도화가 이뤄졌다.
이러한 성과에도 한국의 일방적 양보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소극적 태도는 양국 간 이익 불균형을 초래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 개선이란 명분 아래 사도광산 문화유산 등재, 라인야후 사태, 일본 군함의 독도 훈련 등에 대해 저자세 외교로 일관했다. 독립기념관장 임명 논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 발언 논란 등 윤 정부 인사들의 역사인식이 도마에 오른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야당의 '반일 프레임'에 따른 정치 공세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
퇴임 직전 정상이 외국을 방문해 회담을 갖는 것은 이례적이다. 저조한 지지율로 퇴진을 발표한 기시다 총리의 방한이 한일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치적 과시' 이벤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기시다 총리가 한일관계 개선을 진정한 성과로 여긴다면, 이번 회담에서 과거사 문제 등에 한국인이 수긍할 수 있는 전향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 윤 대통령도 사도광산 등재와 관련한 일본의 후속 조치 이행 등 마땅한 요구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리더십 교체가 발생해도 흔들리지 않는 한일 우호관계가 뿌리내릴 수 있다. 한일관계 개선이 한때 개별 지도자들 간 브로맨스의 결과물에 그쳐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