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은 '지속가능성' '녹색성장' '친환경' 구호를 외치고, 소비자들도 '착한 소비'에 열 올린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로 치닫는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계속 치솟고, 기후재앙은 더 심해지고 가속화한다. 왜일까.
영국 로열홀러웨이런던대학에서 인문지리학을 가르치는 로리 파슨스의 책 '재앙의 지리학'은 글로벌 공급망이 감춘 기후변화의 진실을 노동의 관점에서 파헤친다. 부제는 '기후붕괴를 수출하는 부유한 국가들의 실체'.
캄보디아의 벽돌 가마와 의류 하청공장에서 현장 연구를 수행한 저자는 기후위기가 자연 현상이 아닌 '거대한 불평등'이라는 실체에 다가간다. 가난한 국가로 공장을 몰아넣고 생산 비용을 줄인 이른바 '혁신적인' 글로벌 공급망은 식민주의의 가장 최근 버전과 다름없다는 것. '탄소식민주의'라 불러도 되겠다.
글로벌 공장에는 물자·재화 생산의 흐름과 공정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기 어려운 거대한 공백이 존재한다. 기업들 입장에선 지속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하는 게 쉬워진다. 이는 글로벌 경제가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는 방식이며, 착한 소비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저자는 기후변화 담론이 별로 다루지 않는 틈새에도 주목한다. 탄소배출량이나 탄소감축비율 등 통계 너머 '자신만의 기후'를 경험하는 공장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등의 삶을 들여다보면서다. 기후변화는 가뭄, 홍수, 폭염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수백만 명의 민중에게는 농사의 중단과 식량의 부족을 의미"하기도 한다.
책은 제로웨이스트나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같은 '소비적 실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글로벌 생산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고 직시해야 할 때라고 역설한다. '기후붕괴'에 맞서 싸울 새로운 전선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