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막으려면 필라델피 회랑 주둔 필수?... 네타냐후 주장, 억지인 이유

입력
2024.09.04 20:00
미국·이집트·이스라엘 '점령 대안' 논의 활발
PA가 감독 맡고 EU 회원국 추가 파병 가능성
"가자 점령, 역사적 합의도 위반" 현실성 낮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이집트 사이의 국경을 따라 길이 14㎞로 형성된 '필라델피 회랑'은 지난해 10월 발발한 가자 전쟁의 휴전 협상에 있어 핵심 쟁점이 됐다. 국내외의 비판에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곳에 자국군을 영구히 주둔시키겠다고 주장하는 반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즉각 철군'을 요구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보상 완충 지대가 이제는 휴전 타결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네타냐후 총리가 내세우는 논리는 '필라델피 회랑에서 이스라엘군이 철수하면 하마스의 무기 밀매·테러 위협을 막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우려는 사실상 억지나 다름없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3일(현지시간) 지적했다. 이스라엘군 점령 없이도 하마스 무기 밀매를 차단할 방안이 이스라엘 안팎의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네타냐후 총리의 고집에는 설득력뿐 아니라, 그럴싸한 명분조차 없다는 얘기였다.

"모사드 국장도 '필라델피 철수' 피력했다"

WP에 따르면 가장 유력한 대안은 '제3 세력 개입'이다. 익명의 미국 고위 관리는 "미국에서 훈련받은 팔레스타인 자치기구(PA) 소속 군 병력 배치가 가장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PA에 필라델피 회랑 감시를 맡기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마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PA가 참여하면, '팔레스타인 자치 원칙' 훼손 없이 미래의 테러 위협을 독립적으로 감시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의 지상군 추가 파병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PA보다 더 중립적인 EU 회원국도 힘을 합쳐 '이중 감시 체계'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이집트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외교적 관점에서 실행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게다가 '필라델피 회랑 직접 주둔'이 필요없다는 주장은 이스라엘 내 주요 안보 인사들마저 공개 지지하고 있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에얄 훌라타 전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지난 2일에는 다비드 바르니아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기관) 국장이 '필라델피 철군' 의견을 중재국에 전달하기 위해 휴전 협상 장소인 카타르 도하로 이동했다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이 이날 보도했다. 같은 날 저녁 네타냐후 총리가 기자회견을 통해 '전후 필라델피 회랑 계속 주둔' 방침을 재확인하기 몇 시간 전에, 정보기관 수장이 총리와 '엇박자' 행보를 보인 것이다. 이스라엘 내각의 심각한 분열을 보여 주는 신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요 관련국도 "이, 가자 점령 불가" 입장

이스라엘군의 필라델피 회랑 영구 주둔은 '가자 점령 금지'라는 중동 평화 원칙을 훼손한다는 점에서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1978년 미국 중재하에 △관계 정상화 △팔레스타인 자치권 보장 등을 골자로 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체결했다. 2005년에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완전 철군하며 필라델피 회랑 통제권을 이집트 및 PA에 넘기기도 했다.

WP는 "이집트는 (휴전 협상안 내) 이스라엘의 필라델피 점령 유지 조항에 매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워싱턴(미국 정부)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