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따라 쌓인 산양 사체… 올겨울엔 떼죽음 막을 수 있나

입력
2024.09.04 16:00
19면
ASF 울타리 야생동물 피해대책 방안 마련 토론회
울타리 개방 시기 놓고는 정부와 시민단체 온도차


지난겨울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 떼죽음의 되풀를 막기 위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 울타리를 시급히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망한 산양 수는 1,022마리에 달했다(본보 6월 14일 보도).

정부는 울타리 부분개방 시범사업 관련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는 내년 이후에나 철거를 검토할 수 있는 입장이다. 반면 시민단체는 당장 올겨울 산양 피해를 막기 위해 이동을 막는 구간을 중심으로 철거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관리실태 진단 및 야생동물 피해대책 방안 마련 토론회'에서는 ASF 차단 울타리의 낮은 효용성과 야생동물 피해를 막기 위한 철거 필요성이 논의됐다. 이날 토론회는 김주영·이기헌·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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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F 울타리 개방, 철거에는 공감대 형성


토론회에서는 ASF 차단 울타리와 산양 사망 간의 연관성이 크다는 근거가 제시됐다. 2019년 11월 처음 설치된 ASF 차단 울타리는 정부가 설치한 광역 울타리 1,800㎞,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1, 2차 울타리 1,200㎞를 더해 총 3,000㎞에 달하며, 예산만 1,700억 원이 넘게 투입됐다.

이기헌 의원실국가유산청과 국립공원공단으로부터 받은 산양 사체 발견 위치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설악산국립공원 내 미시령과 한계령 내 설치된 울타리에 산양 사체가 집중적으로 발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도전문채널 YTN은 전날 겨울철 산양의 행동권이 지름 798m 안인데, 발견된 산양 사체 절반가량이 울타리를 중심으로 798m 이내에 있다는 점을 제시하며 떼죽음과 울타리가 무관하지 않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야생동물의 이동성을 확보하고 생태계 회복을 위해 ASF 차단 울타리를 개방, 철거해야 한다는 데에는 정부와 전문가, 시민단체가 공감하고 있었다. 발제자로 나선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는 "ASF 울타리와 산양 폐사의 관계성은 뚜렷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토록 부정적인 여파를 감수하며 울타리가 고밀도로 존속돼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오연수 강원대 수의대 교수도 "정부가 설치한 ASF 광역 울타리의 효능을 진단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선 해외 상황과 비교하고, 멧돼지의 ASF 음성데이터를 포함해 충분한 정보를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개방 시기엔 온도차… "내년 이후에나" vs "올겨울 전 해야"

울타리 개방 시기를 놓고는 정부와 시민단체 간 온도차가 컸다. 정부는 환경부가 추진하고 있는 '야생멧돼지 ASF 차단 울타리 효과분석 및 관리개선 방안'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는 내년 5월 이후에 개방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환경부는 이와 별도로 올해 3월 강원지역 21개 지점을 4m씩 개방하고 야생동물의 이동현황을 모니터링하는 울타리 부분개방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시범 부분개방 지점은 ASF가 발생하지 않고 양돈농가로부터 떨어진 곳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개방 구간이 짧고, 산양이 사망하거나 구조된 위치 등에 기반하지 않은 채 시행돼 모니터링이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본보 4월 18일 보도).


김정주 농림축산식품부 구제방역과장은 "ASF 중앙사고수습본부는 환경부가 추진 중인 연구용역을 토대로 ASF 울타리의 합리적 운영 방안을 마련해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정윤환 환경부 야생동물질병관리팀 과장도 "연구용역을 토대로 개방구간 선정 및 단계적 개방 시기 등을 포함한 관리 로드맵을 내년까지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반면 시민단체는 울타리 철거의 시급성과 개방 확대를 요구했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은 "이미 지난해 환경부가 실시한 ASF 차단 울타리 실태 조사 및 관리방안에 대한 연구와 산양 집단 폐사 상황 등은 ASF 중수본이 울타리 철거를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주장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박영철 강원대 산림과학대 교수도 "올겨울 재난지역과 취약지역을 중심으로 울타리 개방과 철거가 필요하다"며 "정부는 이에 대한 적극적 방안을 모색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부 "울타리 추가 개방 등 검토할 것"


ASF 울타리를 개방하되 농가 주변 울타리는 존속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조호성 전북대 수의대 교수는 "ASF 울타리는 양돈장 주변 전파 방지를 위한 목적으로 변경해 유지해야 한다"며 "다른 지역의 경우 개방을 포함 다양한 조치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관련 예산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임종덕 국가유산청 동식물유산과장은 "제대로 된 이송차량과 치료소조차 구비되지 않아 힘들게 구조한 산양이 사망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며 "구조현장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예산 지원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시민단체와 학계의 지적에 정부도 정책 변경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 과장은 "산양의 이동성을 저해하는 요소와 먹이 급여, 구조 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서 개방을 확대할 수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올해 ASF 중수본 내 울타리 철거를 검토할 수 있냐는 질의에 김 과장은 "울타리 관리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울타리 개방과 철거와 관련) 충분히 검토할 만한 결과를 제시한다면 중수본 차원에서 이를 반영해 결정할 수 있다"고 답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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