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그림은 뒤돌아선 채 달에 소변을 보고 있는 남자를 묘사하고 있다. 16세기 플랑드르 거장 대(大)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의 '달에 오줌 누기'라는 매우 재미있는 작품이다.
'달에 오줌 누기'는 네덜란드의 인기 있는 속담을 그림으로 표현한 '12개의 플랑드르 속담'(아래 작품)의 그림 중 하나다. '12개의 플랑드르 속담'은 작은 원형의 나무 패널에 그려진 각각의 열두 그림을 하나의 틀에 모으고, 그림들 아래에 그 장면에 해당하는 속담을 적어 놓은 작품이다. 달에 오줌을 누는 남자 그림 밑에는 '내가 무엇을 하든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계속 달에 오줌을 누고 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달에 오줌을 누는 것'은 본질적으로 헛된 것, 성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영어에도 '바람에 오줌을 누다(pissing in the wind)'라는 비슷한 관용구가 있다.
브뤼헐은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로 풍속화, 풍경화, 종교화 등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그렸다. '눈 속의 사냥꾼', '바벨탑', '죽음의 승리', '네덜란드 속담', '아이들의 놀이', '농가의 혼인식' 등 우리에게 익숙한 명화들이 그의 작품이다. 특히, 당대 화가들이 그리지 않은 농부와 농촌 생활 모습을 많이 그려 '농부 브뤼헐'이라고도 불린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당시 플랑드르의 풍습과 전통을 묘사하고 있어 귀중한 역사 자료가 되기도 한다. 브뤼헐의 그림은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하는 풍자와 해학이 넘쳐나는데, '12개의 플랑드르 속담' 역시 그렇다.
사실 '소변'은 서양 미술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림 주제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 평범한 생리 현상을 묘사했다. '오줌 누는 인물'들은 다채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그림에서는 소변보는 큐피드를 꽤 많이 볼 수 있다. 아기 바쿠스가 포도주를 마시며 오줌을 줄줄 싸는 모습의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귀도 레니(Guido Reni)의 작품은 특히 눈길을 끈다. 18세기 프랑스 화가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는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걷어붙이고 휴대용 오줌 항아리에 소변을 보는 여자를 그렸다.
이런 고상하지 못한 모티프는 청교도적인 사회 규범에 대한 일종의 반항으로 볼 수 있다. 예술가들은 오줌을 누는 신체 행위를 통해 사회가 부과하는 억압과 금기를 깨트리려고 한 것이다. 종종 그림 속 오줌을 누는 행위는 억압된 섹슈얼리티의 표현, 다산의 상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혹은 단순히 배설 행위에 대한 유쾌한 유희나 장난으로 그려진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브뤼헐은 어떤 의도로 '소변' 주제의 그림을 그렸을까? 브뤼헐은 오랜 시간을 거치며 민간에 전해 내려온 속담들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아주 신랄하고 유머러스하게 드러내 보인다. 그의 작품 '12개의 플랑드르 속담'에서는 '달에 오줌 누기'를 포함해 인간의 빈곤한 도덕적 품성이나 비이성적인 행동을 묘사하는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마치 인류의 모든 문제를 12개의 그림으로 요약해 보여주는 것 같다.
바람에 펄럭이는 망토를 들고 있는 사람은 쉽게 입장을 바꾸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람, 양손에 각각 불과 물을 들고 있는 여성은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을 나타낸다. 돼지에게 장미를 던지는 사람은 자격 없는 자에게 노력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을, 송아지가 물에 빠져 죽은 후 구덩이를 메꾸는 사람은 사후약방문을, 벽에 머리를 부딪히는 사람은 불가능한 것을 성취하려고 애쓰는 것을, 술을 마시며 주사위 놀이를 하는 남자는 재산을 잃고 나쁜 평판을 얻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 그림들은 단순히 속담을 그린 삽화가 아니라 브뤼헐의 동시대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표현한 것이다. 브뤼헐은 속담 그림을 통해 도덕적 교훈의 메시지를 던진다. 1559년, 브뤼헐은 이 작품 외에도 그는 약 126개의 속담을 하나의 그림 속에 표현한 '네덜란드 속담'을 제작했다.
브뤼헐의 시대에는 아주 풍요로운 촌철살인의 속담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마치 수수께끼같이 모종의 숨은 의미가 담긴 이런 속담들을 좋아했다. 그것은 인간과 세상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는 지혜의 저장소였다. 브뤼헐의 속담에 관한 그림들은 당대에 속담이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잠언과 속담은 고대부터 있었지만, 이에 대한 관심은 네덜란드 인본주의자인 에라스뮈스(Erasmus)의 저작으로 인해 16세기에 이르러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의 속담집 초판은 1500년에 출판되었는데 고대와 성경에서 발췌한 약 800개의 잠언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했으며 여러 쇄 출간되었다. 속담을 목판화로 묘사한 작품도 많이 제작되었다.
인간의 악덕과 어리석음을 풍자한 브뤼헐의 메시지는 500년의 시차가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감되는 바가 있다.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우주의 공통점은 무한하다는 것'이라고 했던가. '달에 오줌 누는 남자' 같은 사람들도 어느 시대나 존재한다. 이 그림을 보면서 기상천외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