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전부터 드러나긴 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골이 급격히 깊어진 건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가 계기가 됐다. 광우병 시위와 노 전 대통령 서거가 겹치면서 당시 한국 정치권에서는 여야 소통이 단절되고, 여의도에서는 여당 독주와 야당의 국회 점거농성 등 정치 파행이 계속되고 있었다. 정치권의 편가르기를 우려하는 합리적 시민사회와 독자들의 목소리가 쏟아졌고, 한국일보는 ‘중도가 나서 중심(中心)을 잡자’는 기획(6월 25일자)으로 호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가 설복하는 쓴소리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매체는 한국일보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중도의 역할이 커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입체적인 취재를 통해 결과물을 내놨다. 정치권의 파행을 단순히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중도 성향이 다수를 차지하게 된 대한민국 시민의 정치성향 지형을 분석했다. 정파 간 협치가 원활한 외국 사례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정치권의 대립이 국가 경쟁력을 떨구는 요소임을 강조하는 한편,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집권당인 한나라당과 야당(민주당)에 변화를 주문했다.
이 기획은 ‘침묵하는 다수’로도 불리는 중도층의 실제 규모를 파악했다는 데에서 주목을 받았다. 미디어리서치가 진행한 조사에서 진보(28.0%)와 보수(27.2%)로 응답한 비율보다 1.5배 이상 많은 38.9%의 시민들이 스스로의 정치성향을 ‘중도’라고 답했다. 한국일보는 이 같은 수치를 근거로 여야 모두 극단적 지지층에 호응하는 정쟁보다는 중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문가들의 조언도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당내 계파갈등이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급진적 사회 세력에 기대는 피동적 모습에서 벗어나야 국민 지지를 얻는다 △거대 양당의 틈 속에서 중재역할을 맡은 제3정당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일보의 시의적절한 기획은 분석의 촘촘함과 주장의 구체성과 함께,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강화론’과 맞물리며 정치권에서 큰 반향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