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1985)는 끔찍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민주주의 국가였던 미국이 어느 날 치밀하게 계획된 쿠데타에 의해 기독교 근본주의로 무장된 전체주의 국가인 길리아드 공화국으로 변한다. 원자력발전소가 파괴되고 방사능이 유출되어 환경 재앙이 겹친다. 출산율은 제로(0) 수준으로 떨어진다. 태어난 아이들마저 몸통이 두 개이거나 심장에 구멍이 뚫려 있거나 팔이 없거나 손발에 물갈퀴가 달린 경우가 많다.
이런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다산이 가능한 여성은 모두 사령관(commander) 계급의 소유가 되어 ‘아기 생산도구’로 특별히 관리되며 누군가의 소유물임을 가리키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프레드 워터포드 사령관에게 배속되면 '오브(of)프레드'가 되는 것이다. 소설에는 오브찰스, 오브글렌, 오브워렌이 등장한다. 이들은 시녀(handmaid) 계급이고 소설의 화자는 오브프레드이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출산이다. 그러기 위해 매달 임신 가능성이 높은 시기에 사령관과 성관계 의례를 치른다. 임신하고 출산하면 아이는 사령관 부부의 자녀로 길러지고 시녀는 다른 가정에 보내져 또다시 성관계 의례를 치러야 한다.
시녀 계급의 역할에 대한 합리화는 구약성경 창세기 구절들을 인용하며 여성들을 세뇌시키는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그런 역할을 하는 기관의 이름은 ‘라헬과 레아 센터’이다. 라헬과 레아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야곱의 두 아내이다. 라헬은 미모가 뛰어나고 야곱의 사랑을 받았지만 오랫동안 자녀를 낳지 못했고, 레아는 미모는 뛰어나지 않았으나 많은 자녀를 낳았다. 자신의 '여성적 가치'를 증명할 수 없어 고통스러웠던 라헬은 자기 시녀인 빌하를 남편 야곱에게 주어 자녀를 얻기로 결정한다. 빌하는 야곱과의 관계에서 두 아들을 낳고 이들은 라헬의 자녀로 간주된다. 이 내용은 길리아드 공화국에서 여성을 관리하는 제도를 합리화하는 종교 의례의 메시지로 사용된다.
길리어드 사회는 철저히 가부장적이다. 모든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다. 여성들은 그들의 출산 능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몇 가지 계층으로 나뉘어 있다.
화자인 오브프레드가 속한 '시녀 계급'은 낮은 지위이긴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신성한 출산이므로 매우 중요한 임무를 맡은 셈이다. 모두 빨간색 의상을 입고, 얼굴을 가리는 하얀색 보닛을 써야 한다. 그들은 철저한 감시와 통제 속에서 살아가며 도망치거나 저항하면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시녀 위에는 '아내 계급'이 있다. 그들은 지배적 위치에 있는 남성, 특히 사령관과 같은 상류층 남성과 결혼한 여성이다. 그들의 임무는 집안일을 관리하고 시녀의 출산을 감독하는 것이다. 아내 계급은 파란색 옷을 입고 파란색 우산을 쓴다. 파랑은 순수성과 권위를 상징한다. 남편이 죽으면 검은색 의상을 입어야 한다. 아내들은 출산 문제에 아무런 권한이 없다. 불임이거나 나이가 들어 출산이 불가능해지면 시녀를 통해 아이를 얻어야 한다. 이로 인해 시녀에게 적대감과 질투심을 가지게 되고 시녀와 긴장 상태에 놓인다.
번역본에 나오는 '하녀 계급'은 영어로 마르타(Marthas) 계급이다. 이 역시 성경에 등장하는 자매인 마리아와 마르타의 에피소드에서 인용한 것이다. 성경 속의 마리아는 예수의 이야기를 듣고 마르타는 예수와 마리아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등 시중을 든다. 소설에서 하녀는 출산이 불가능한 여성들로 요리, 청소, 집안 관리를 맡는다. 시녀보다 지위가 낮고 맡겨진 일 이외에는 철저하게 소외되고 통제된다. 탁한 녹색 의상을 입는다.
하위 계층 남성과 결혼한 여성들은 '이코노아내'로 최하위 계급이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있으며 가정에서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 한다.
여성이면서 유일하게 권력을 가진 계급은 '아주머니(aunts)'이다. 이들은 시녀들을 세뇌시키고 감시하고 통제한다. 행정적인 역할을 위한 것이지만 유일하게 독서가 허락된 계층이며 시녀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도 가지고 있다.
가장 낮은 계급은 권력층 남성의 ‘성 노예’로 이용되는 '제제벨'이다. 제제벨은 성경에 등장하는 최고의 악녀이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배제된 존재이거나 범죄자로, 비밀스러운 제제벨 하우스에 감금되어 ‘성 노리개’ 역할을 한다.
이런 계급 구조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콜로니에 보내진다. 공동체라는 뉘앙스가 담긴 이름과 달리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인물이나 반체제 인물들을 보내는 강제 노동 수용소 같은 곳이다. 방사능이나 독성 물질로 오염된 불모지로, 사실상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처벌 공간이다.
이토록 지독하게 가부장적인 전체주의 사회에서 시녀인 오브프레드는 억압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색한다. 생각이 많으면 끝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줄겠지만 끝까지 살아남겠다고 결심한다. 주변을 관찰하고 녹음으로 기록을 남기면서 생각을 멈추지 않은 채 실오라기 같은 기회라도 생기면 모험을 감행한다. 그는 아무리 숨막히는 통제 아래에 있다 해도 희망과 저항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찾으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지옥 같은 전체주의 체제 아래서도 사람이 살고 있다. 인간의 본성을 말살하는 완벽한 통제란 불가능하며, 은밀히 조직되어 활동하는 저항세력도 없을 수 없다. 사령관 같은 최고위층 계급도 역시 사람이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기계적인 성관계 속에서 그들 역시 스트레스를 받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그들에겐 진짜 사랑 또는 그 비슷한 것이 필요하다. 한 사령관은 오브프레드에게 그런 종류의 불법적 관계를 제안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 덕분에 완벽한 통제의 틀에 틈이 생기고 금이 가기 시작한다.
사령관의 아내도 범법 행위를 계획한다. 아내 입장에서 보면 임신 시도를 위한 ‘의례’에 참여해 남편과 시녀의 성관계를 지켜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횟수를 줄이려면 시녀가 빨리 임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아내는 시녀가 더 젊고 건강한 사령관의 운전수 닉과 성관계를 하게 만든다. 오브프레드와 닉의 관계는 ‘기계적인 관계’로 끝나지 않고 사랑에 빠진다. 이후 상황이 급변한다.
비인간적인 모든 사회적 적폐를 박살내는 가장 강력한 힘은 언제나 사랑이다. 사랑은 불가능해 보이는 모험을 감행하게 만드는 예측불가능한 변수다. 오브프레드가 사랑한 닉은 저항세력 단체인 메이데이의 일원이었다. 닉은 단체를 동원해 끔찍한 시스템의 통제에서 오브프레드를 빼낸다. ‘시녀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소설엔 부록 같은 장이 하나 더 남아 있다. 제목은 ‘시녀 이야기의 역사적 주해’이다. 내용은 2195년 6월 25일 국제역사학회 총회의 일환으로 한 대학에서 열린 ‘길리어드 연구학’ 제12회 심포지엄의 속기록이다. ‘시녀 이야기’가 어떻게 발견되어 전해졌는지를 자세히 다룬다. 애트우드는 이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졌던 역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소설이 쓰인 시기인 1979년에는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 여성들을 길리아드 공화국 여성과 비슷한 처지로 내몰았고, 미국에서도 기독교 근본주의가 득세한 로널드 레이건 정부(1981~1989)에서 여성의 권리가 추락했다.
마지막 장을 읽어보면 ‘이야기(tale)’가 여성의 질을 가리키는 '꼬리(tail')와 발음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소설에는 이처럼 이중, 삼중의 의미를 담은 단어와 문장이 많이 나온다. 2017년 제작을 시작한 같은 제목의 드라마는 원작에 충실할 뿐 아니라 소설의 중요한 문장을 거의 그대로 사용한다. 드라마를 구해 본 뒤 다시 소설을 읽었다. 더 많은 의미를 채굴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사족 같지만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은 발표되면서부터 당연히 대단한 찬사를 받았으며 권위 있는 상을 많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