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에서 '딥페이크'까지, 한국도 '텔레그램 퇴출' 압박해야

입력
2024.09.06 13:00
14면
[조태성의 이슈메이커]
딥페이크 대응 위한 오지원 변호사의 제안
①플랫폼 기업의 범죄 방조 행위를 막자
②피해확산 막기 위한 응급조치권 만들자
③성착취물 삭제, 가해자에게 부담시키자
④'성적 인격권'으로 피해자를 보호하자
⑤성착취물 피해자의 두려움에 공감하자

편집자주

한국의 당면한 핫이슈를 만드는 사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몇몇 학교에선 여학생들에게 일단 SNS에 올린 사진을 내리라고 했다면서요? 그것부터가 문제인 거예요. SNS에다 올린 게 무슨 잘못입니까. 그걸 가지고 못된 용도로 쓰는 게 범죄라는 걸 이참에 확실히 가르쳐주는 게 더 중요한 거죠."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법과 치유' 사무실에서 만난 오지원(47) 변호사. 이번에 터진 딥페이크 사건에 화가 난다는 듯 말을 이었다. 화가 난 이유는 딥페이크 사건으로 전국의 학부모들이 '내 아이가 혹시?'라며 술렁대서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법무부 산하 '디지털 성범죄 등 대응 전문위원회'에 참여한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이 위원회는 2020년 경찰 수사 끝에 'N번방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주범들이 체포되면서 만들어졌다. 영화감독 변영주가 위원장을 맡고, 그룹 원더걸스 출신 가수 핫펠트(본명 박예은), N번방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과 ‘리셋’ 등이 전문위원으로 참여했으며 '검찰 미투'로 각인된 서지현 검사가 실무 TF팀장이었다. '법무부스럽지 않은 구성'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판사 출신인 오 변호사는 당시 대한변호사협회 여성아동특별위원으로 위원회에 참여했다.


딥페이크? 예고된 참사다

오 변호사는 "지금 딥페이크 문제가 뜨겁다고 관련 규정 몇 개 고치고, 형량 좀 더 높이고 끝낼 것이 아니라 무한복제, 무한전파가 가능한 디지털 시대의 특성을 감안해 피해자 중심으로 접근법을 완전히 뜯어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이런 자세로 대응하겠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새로운 유형의 디지털 범죄에 계속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어 "부처별로 단기간에 뭔가 내놓지 말고 정부와 국회가 협의체를 만들어 반년 이상 집중적인 논의를 거쳐 수사, 재판, 피해회복 등 전 과정을 다 스크린해봤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전문위가 여러 회의 끝에 내놓은 11차례의 권고안과 보고서를 읽었다. 이번 딥페이크 사태는 어쩌면 예고된 참사처럼 보인다.

"그렇다. 연예인들은 이미 딥페이크 피해를 보고 있었다. 그런 기술이 있고, 누구나 그 기술에 쉽게 당할 수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 아무 대책이 없었던 결과다."


-지금도 '일회성 장난'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사건도 붙잡고 보니 10대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런 유의 사건이 터졌을 때 가해자 부모들의 반응은 어쩌다 실수다, 장난이었다는 건데 이건 두 가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하나는 성교육의 명백한 실패라는 측면, 그리고 또 하나는 '수사해봐야 우리를 못 잡을 것'이라고 아이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10대들의 장난'으로 봐선 안 된다

-법원은 흔히 '어리고, 초범이고, 반성한다'는 이유로 형을 깎아주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

"온갖 것을 다 검색해보는 인터넷 시대에 아이들도 '경찰이 수사해봐야 어차피 텔레그램은 협조하지 않을 거다, 그러면 우리를 잡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안 그러면 왜 굳이 텔레그램까지 가겠나. 우리는 자꾸 텔레그램을 우리로선 어쩔 수 없는 성역처럼 얘기한다. 그래서 나는 수사기관 책임이 적지 않다고 본다. 수사기관이 그런 죄를 저지를 여지를 준 것이다."

-프랑스는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를 아동 성범죄 등을 방조했다는 이유로 체포했다.

"맞다. 그래서 권고안에서도 텔레그램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일정 기간 서비스 정지는 물론 앱 삭제 등으로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우리나라가 법이 없는 나라도 아닌데, 아동 성착취물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강력한 범죄로 엄정하게 대응하는데, 우리만 왜 그렇게 손 놓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게 누적되면 한국이 그런 범죄자들에게 일종의 해방구가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나. 이미 성착취물 유통 1위 국가가 한국이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나. 플랫폼 기업들을 강하게 압박해야 하고 수사 관련 협조는 철저하게 받아내야 한다."


-이용자 불편 등 여러 요소를 감안해야 하는 것 같다.

"나도 텔레그램 쓴다. 편리하고 잘 쓰고 있다. 하지만 성착취물 같은 중대 범죄 행각을 잡기 위한 수사에 비협조적이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줘야 한다."


디지털 범죄는 피해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다

-수사기관에 '응급조치' 권한을 부여하자고도 제안했다.

"기존 성범죄는 대개 피해자의 고소로 시작한다. 고소장을 받고 피해자 진술을 확보하고 그다음에 압수수색을 통해 증거를 확보한다. 그런데 딥페이크 같은 디지털 성범죄는 자기가 당한 줄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 피해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고 알려주면 그제야 찾아보고 충격을 받는다. 기존 수사 프로세스와 안 맞다. 그러니 수사기관이 증거를 수집할 권한, 일정 정도 증거를 확보한 뒤엔 더 이상의 피해 확대를 막기 위해 접근을 차단하고 영상을 삭제할 권한 등을 줘야 한다. 수준과 방법은 일선 수사기관의 경험을 들어서 다양하게 정할 수 있다."


-사생활 침해, 사찰 논란도 가능하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 그럴 수 있는지 명확한 규정과 수사담당자들의 전문성 강화, 반복적인 교육훈련이 필수다. 기본적으로 이런 내용들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수사기관으로 중심점을 이동하자는 것이다. 방통위는 위원회 조직이라 움직임이 느리다. 가정폭력법상 분리조치처럼 디지털 범죄에 재빨리 대응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에 응급조치 및 긴급 임시 조치 권한을 줘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물들은 삭제하는 것도 골치 아픈 문제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지원은 하는데 많이 부족하다. 자기가 지우겠다고 매일 밤마다 그 범죄 흔적을 스스로 뒤지는 사람, 한 달에 몇백만 원씩 제 돈 들여 지우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차라리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처벌 단계에서 영상원본 삭제 등을 가해자에게 요구하고 객관적으로 확인해서 형량에다 반영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가해자가 ‘반성합니다, 다 지웠습니다'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객관적 확인도 없이 형량을 감경해 준다. 그러나 삭제를 양형요소로 삼으려면 수사기관도 법원도 제대로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는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또 피해자에게 피해 진술 기회도 줘야 한다. 아는 사람이 저지르는 디지털 성범죄는 사회적 관계를 파괴하는 행위다. 그저 이상한 사진 몇 장 이렇게 나돌았다로 끝낼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저 사람의 범행으로 인해 나의 사회적 관계가 이렇게 파괴됐습니다'라고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성적 인격권'도 만들자고 했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성적 가해 행위나 '체액 테러' 같은 비접촉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메타버스 등 온라인 공간에서 미성년자 등을 상대로 심각한 성적 언동, 괴롭힘을 지속하는 경우 등은 처벌에 공백이 있다. 성적 인격권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 피해자의 성적 이력이나 평판 같은 걸로 공격하는 일을 줄이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성적 자기결정권과 함께 성적 인격권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관계를 파괴하는 중대 범죄다

-이번엔 좀 다를까. 여야·정부 모두 들여다보겠다고들 한다.

"개인적으론 큰 기대는 안 한다. 요즘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10대들의 디지털 성범죄'라고 하면 '어릴 적 여자아이 치마 들추기 비슷한 거 아니냐', '애들끼리 장난삼아 야한 사진 만들어 돌려본 거 가지고 뭘 그러냐', '실제 죽고 다치는 심각한 범죄가 얼마나 많은데 저런 건 건당 벌금 50만 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 인식의 틀을 깨야 한다. 지금 아이들에게 디지털 세상은 너무나 친숙한 공간인데, 그 세상에서 뭇 사람에게 내가 장난감처럼 소비됐다는 데서 오는 공포, 자괴감 같은 건 엄청 크다. 이 고통에 대한 공감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변화는 어렵다."

-안 그래도 이준석 의원 같은 사람은 과잉 규제가 걱정된다고 했다.

"그 또한 의견 자체로는 충분히 낼 수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서 뭘 하겠다는 건가,라고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문제 같은 것에 가장 관심 있는 곳은 여가부다. 선거에 이기려고 여가부를 해체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미우니 고우니 해도 정부 부처 가운데 젠더적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는 유일한 부처인 여가부를 저렇게 유명무실하게 만든 공백은 크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 계속해서 더 많아질 텐데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답도 함께 내놔야 한다."


-당시 전문위원회 논의 결과는 어떻게 됐나.

"정권이 바뀌면서 흐지부지됐다. 정권이 바뀌고 서지현 검사가 다른 검찰청으로 발령받은 뒤 사표를 내면서 우리 전문위원들도 거의 다 사표를 냈다. 사실 여가부도 아니고 법무부에서 젠더적 관점을 가진 위원회를 만들었다는 거 자체는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 권고안을 바탕으로 법무부가 열심히 뛴다면 뭔가 상당한 성과를 낼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는데, 그게 모두 사라진 것이다."

-정권 바뀌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 때 이어질 수 없었나.

"법무부에서 이 위원회를 다시 이어가겠다는 취지의 말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뒤론 들은 게 없다. 지금이라도 당시 전문위원회의 권고안을 토대로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들었으면 한다."

조태성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