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학계의 슈퍼스타 스티븐 킹(77). 1974년 소설 ‘캐리’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84권의 책을 냈고 전 세계에서 책 3억5,000만 권을 팔았다. 110편의 영화·드라마 원작자로 기네스북에도 기록됐다. 공포 소설을 많이 쓴 그를 두고 “그의 이름은 공포와 동의어고, 그의 작품은 공포 장르의 대명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그의 전기 같은 책인 ‘스티븐 킹 마스터 클래스’를 쓴 작가 베브 빈센트는 말했다.
킹의 데뷔 50주년, 그중에서도 공포 소설과 어울리는 계절인 여름을 맞아 킹의 데뷔작인 ‘캐리’와 신작 ‘홀리’가 나란히 번역돼 나왔고, 온라인서점에서는 '스티븐 킹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소설을 각색한 영화·드라마로 더 익숙한 킹의 작품을 읽을 기회다. 장성주 번역가는 한국일보에 “킹의 소설은 붙잡고 앉아서 분석하거나 단서를 하나하나 적어 가며 추리하기보다는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으로 읽는 게 좋다”고 말한다. “텍스트에 몸을 싣고 상승과 낙하, 질주와 회전을 의식의 차원에서 느끼라”는 의미다. 장 번역가는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킹의 히트작 ‘미저리’(2004)를 한국에 내고 킹의 여러 작품을 번역한 자타공인 ‘킹치광이’(킹과 미치광이의 합성어)다.
‘스티븐 킹 마스터 클래스’에는 소설을 이모와 친구들에게 팔아 용돈벌이를 했던 타고난 작가 킹의 어린 시절이 생생하게 담겼다. 미국 메인주에서 나고 자란 소년이 ‘진짜’ 작가가 되기까지는 숱한 퇴짜가 있었다. 세탁소에서 일하며 소설을 썼지만, 늘 게재 거절 통지서를 받았다. 심지어 데뷔작 ‘캐리’의 원고는 한때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우연히 이를 발견한 킹의 부인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그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캐리’에 이어 킹의 첫 베스트셀러가 된 ‘살렘스 롯’(1975), ‘샤이닝’(1977)으로 명성을 얻고 2003년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전미 도서상에서 평생 공로상까지 받은 킹이지만, 문단으로부터 “싸구려 삼류소설 작가”라는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장 번역가는 “사회의 금기를 정면으로 다루며 이해와 포용 대신 유혈과 파괴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작가이다 보니 당연히 비평가들보다는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짚었다.
그럼에도 킹은 오늘날 “악의에 가득 차서 (나를) 비판했던 비평가들 대부분보다 내가 더 오래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현역 작가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의 팬덤인 전 세계 ‘킹 키드’는 생명력의 원천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자란 이들이 “킹의 작품을 영상화하고, 그 영상물을 본 관객들이 다시 영향을 받아 여러 분야의 창작자로 자라나고 있다”고 장 번역가는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한 작가가 뿌린 씨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 씨앗이 다시 널리 퍼져 새로운 세대로 자라나는 것. 이것을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목격하는 것보다 더 큰 보람이 작가에게 있을까요.”
1947년생인 킹은 화상회의 소프트웨어인 줌으로 인터뷰를 하고,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거침없이 사회 비판 발언을 내놓는다. 최근 킹의 일부 소설이 극우 성향의 론 디샌티스가 주지사인 미국 플로리다에서 금서로 지정되자 바로 X에 욕설을 남기기도 했다. 장 번역가는 킹의 다작 비법을 이런 “자기표현 욕구가 아닐까”라면서 “킹의 X를 보면 이 사람은 어떻게 책을 그렇게 많이 쓰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또 이렇게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2002년 다크 타워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더는 할 말이 없을 것”이라면서 은퇴 의사를 비친 이후로도 킹은 꾸준히 소설을 쓴다. 올해 5월에도 단편집 ‘You Like It Darker’를 낸 그는 미국 공영 라디오 NPR에서 지금까지 몇 권의 책을 냈는지를 묻자 “세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70권 정도(실제로는 84권)일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어릴 때 100권의 소설을 쓸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인생이 되리라 생각했다”고 덧붙인 그의 은퇴는 아직도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