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불통’ 네타냐후 "누구도 내게 설교 못 한다”... 인질 피살 사태에도 강경 모드

입력
2024.09.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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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 6명 사망' 속 첫 기자회견서 기존 입장 고수
"70만 명 이상 참여" 반정부 시위도 이틀째 지속 
하마스, '인질 영상' 공개하며 "추가 살해" 협박도

이번에는 진짜 최대 위기다.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의 전쟁이 11개월 동안 이어지고 있는데도, ‘하마스 궤멸’ 목표 달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군사적 압박을 통한 인질 구출 전략도 ‘인질 6명 피살’이라는 실패로 귀결되며 후폭풍이 거세다. 안에서는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민심의 폭발, 바깥에서는 미국·영국 등 동맹의 휴전 압박 고조에 직면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얘기다. 그럼에도 네타냐후 총리는 “누구도 내게 설교할 수 없다”며 강경 모드만 고수하고 있다.

네타냐후 "필라델피 철군은 없다" 고수

네타냐후 총리는 2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인질 구출 실패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가자지구에 억류 중이었던 6명의 인질이 숨진 채 발견된 이후 첫 기자회견이었는데, 일단은 대국민 사과를 한 셈이다.

그러나 곧바로 “인질이 죽은 건 하마스가 합의를 원치 않기 때문”이라며 화살을 돌렸다. 그러면서 “악의 축(이란과 대리 세력)이 필라델피 축을 필요로 한다”며 “회랑은 하마스에 산소와 재무장을 제공할 파이프라인”이라고 강조했다. 이집트와 국경을 접한 가자지구 남쪽 끝 지역인 ‘필라델피 회랑’에 이스라엘군을 영구히 주둔시키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내에서는 “필라델피 회랑 군 주둔을 정부가 고집한 탓에 인질 6명이 하마스에 살해된 것”이라는 여론이 거세다. 앞서 하마스가 수용한 3단계 휴전 중재안에는 이스라엘이 45일간 필라델피 회랑에서 철군하는 대신, 하마스는 인질 33명을 석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휴전 협상 타결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필라델피 회랑 문제와 관련, 네타냐후 총리의 비타협적 태도를 비판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스라엘 전역에서 ‘즉각 휴전·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전날에 이어 이날도 반정부 시위에 70만 명 이상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가디언 등은 “시위가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정권 전복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CNN방송은 “네타냐후가 취할 선택의 폭이 어느 때보다 좁아졌다”고 짚었다.

이스라엘 정부의 분열상도 깊어지고 있다. 현재 64명 정도로 추산되는 생존 인질의 무사귀환 해법을 두고 극우 연정 일원인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과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시위대가 “하마스 지도자인 야히야 신와르의 꿈을 채워주고 있다”며 네타냐후 총리를 엄호했다. 반대로 안보 내각 일원인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인질의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필라델피 회랑을 우선시한다는 사실은 도덕적 수치”라며 공개적으로 반기를 또다시 들었다. 뉴욕타임스는 “(극우 연정은) 즉각적 휴전 요구가 항복과 마찬가지라고 조롱한다”며 “전쟁 종식 방법을 두고 이스라엘이 깊이 분열돼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네타냐후, 충분한 노력 안 해"... 하마스는 심리전

문제는 국제사회도 점점 네타냐후 총리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네타냐후 총리가 인질 협상 타결을 위해 충분히 노력한다고 보느냐’라는 취재진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서방 주요 동맹인 영국 정부도 ‘휴전 압박’ 일환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일부 무기 수출을 전격 중단한다고 밝혔다.

하마스의 심리전 강화도 난제다. 하마스 무장조직 알카삼여단은 이날 성명에서 “네타냐후가 (휴전) 협상을 성사시키지 않고 군사적 압박으로 인질들이 풀려나도록 하겠다면 이들이 관 속에 갇혀 가족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의미”라며 ‘추가 살해’를 경고했다. 하마스는 지난달 31일 숨진 채 발견된 인질 6명의 생전 모습을 담은 동영상도 공개했다. 피살된 인질 중 한 명인 에덴 예루살미(24)는 영상에서 “네타냐후와 이스라엘 정부는 당장 우리가 풀려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라”고 호소했다.

이동현 기자
위용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