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 ‘농심배 매직’ 이어질까…‘제26회 농심배’ 관전포인트는?

입력
2024.09.03 16:33
23면
5일부터 개막, 내년 2월까지 진행
신 9단 연승 여부와 90%대 승률 달성 관심사
농심배 특화된 진용 갖춘 중국팀 행보 주목
최근 상승세인 일본팀 역시 ‘다크호스’ 지목

한·중·일 바둑 삼국지로 알려진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우승상금 5억 원) 개막이 초읽기에 착수했다. 올해로 26회째를 맞이한 이번 농심배는 각 국의 기력 상향 평준화에 힘입어 어느 해보다도 격렬하게 전개될 조짐이다. 세계 유일의 국가대항전인 농심배 단체전 경우엔 선발전부터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한 각국 대표들로 구성된 만큼, 낙점된 선수들의 승부욕도 여타 기전과는 사뭇 다르다.

3일 한국기원에 따르면 ‘제26회 농심배’는 이달 5일부터 내년 2월까지 약 5개월 동안 반상(盤上) 혈투에 돌입한다. 3개국에서 각각 5명의 선수가 출전, 연승대항전(제한시간 각자 1시간, 초읽기 1분 1회, 덤 6집반) 형태로 진행된다.

이번 대회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역시 한국의 5연패 여부와 직결된 세계 랭킹 1위인 신진서(24) 9단의 활약상이다. 신 9단은 직전 농심배에서 한국의 수호신으로 출전, 막판 6연승으로 우승컵도 가져왔다. 이에 따라 지난 22회 대회부터 승수 쌓기에 나선 신 9단의 상승세는 현재까지 16연승으로 늘어난 상황. ‘살아있는 전설’로 유명한 이창호(49) 9단의 농심배 14연승은 이미 넘어섰다. 농심배 통산 전적의 질적인 부문 역시 눈 여겨 볼 대목이다. 현재 16승2패로, 88.89% 승률을 기록 중인 신 9단은 ‘꿈의 승률’인 90%대 진입도 가시권에 뒀다. 농심배를 포함해 현재까지 일본 기사들에겐 42전 전승의 무결점 바둑 행진 여부는 덤으로 따라올 분위기다. 열쇠는 신 9단 이외의 선수들에게 있다. 농심배에서만 13년 연속 단골 출전 중인 박정환(31) 9단을 중심으로 이번 대회에 참전한 신민준(25) 9단과 김명훈(27) 9단, 설현준(25) 9단 등이 중국이나 일본 선수들에게 승리하면서 신 9단의 부담을 얼마나 줄여줄 수 있느냐에 달려서다. 신 9단은 올해 상반기엔 컨디션 난조도 보였지만 현재는 회복한 상태다. 1월엔 세계 메이저 기전인 ‘제28회 LG배 기왕전’(우승상금 3억 원)을 접수한 데 이어 2월엔 ‘제24회 농심배’ 우승까지 견인한 신 9단은 이후 예상 밖으로 3개(제29회 LG배·춘란배·응씨배)의 세계 메이저 본선 탈락에 이어 ‘제10회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우승상금 1억 원) 결승에서도 대만의 무명인 라이쥔푸(22) 8단에게 패하면서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지난달 세계 메이저 기전인 ‘제2회 취저우 란커배 세계바둑오픈전’(우승상금 180만 위안, 약 3억4,000만 원) 우승컵 수집으로 자신감을 회복했고 국내에서 벌어졌던 ‘제5기 쏘팔코사놀 최고기사결정전’(우승상금 7,000만 원) 타이틀도 수집,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각국의 최정예 멤버가 나선 농심배에서 지난해처럼 기적만 기대하긴 힘들다. 지난해 농심배에선 신 9단에 앞서 출전했던 4명의 한국 선수들은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모두 짐을 쌌다.

농심배 맞춤형으로 출격을 대기 중인 중국의 경쟁력에도 이목은 집중되고 있다. 직전 대회에서 한국의 단기필마로 나섰던 신 9단에게 5명 전원이 치욕적인 ‘올킬’까지 당하면서 우승컵을 헌납했던 악몽도 반드시 삭제시키겠단 각오부터 상당하다. 현재 뒤늦게 최전성기에 접어든 리쉬안하오(29) 9단은 최우선 경계 대상이다. 농심배엔 첫 출전인 그는 중국 랭킹 1위(8월 기준)로, 지난 5월 세계 메이저 기전인 ‘제5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전’(우승상금 180만 위안, 약 3억4,000만 원) 우승도 거머쥐었다. 대기만성형인 그는 인공지능(AI) 올인형 기사로도 유명하다. 대부분 중국 프로 기사들에게 앞서 있는 세계 랭킹 1위인 신 9단과 상대전적에서도 2승2패로, 막상막하다. 실제 신 9단 조차 “심리적인 압박을 주면서도 ‘다음 대국에서 최선을 다해도 질 수 있겠다’ 싶은 기사는 (현재 세계 바둑계에선) 리쉬안하오 9단이 유일하다”고 지목할 정도다. 출전 명령만 기다리면서 농심배에 특화된 선수들도 쟁쟁한 실력의 소유자다. 특히 판팅위(28) 9단과 농심배 인연은 찰떡궁합이다. 현재까지 농심배에서만 21승을 수확, 최다승 기록 보유자인 판팅위 9단은 18외와 20회에서 잇따라 7연승을 내달렸다. 판팅위 9단을 ‘농심배 사나이’로 불리는 이유다. 셰얼하오 9단도 25회 농심배에서 7연승을 질주할 만큼, 연승 방식의 대국엔 강한 선수다. 전성기에선 내려온 모양새이지만 이번 농심배 대표팀으로 합류한 커제(27) 9단은 이미 8개의 세계 메이저 타이틀을 수집한 중국 바둑계 거물이다. 여기에 지난 해에만 2개의 세계 메이저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 초일류 기사 반열에 등극한 딩하오(24) 9단도 위력적이다. 직전 농심배에 출전하자마자 첫 패배로 체면을 구겼지만 딩하오 9단은 중국내 차세대 주자 그룹에서도 최상위권에 포진된 상태다. 자국내에선 현재 랭킹 3위(8월 기준)인 딩하오 9단의 1위 등극은 시간 문제로 보고 있다.

일본 또한 무시못할 상대로 점쳐지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 세계 메이저 기전인 ‘제10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우승상금 5억5,000만) 결승전(5번기, 5판3선승제)에서 예상을 뒤엎고 중국의 강자인 셰커(24) 9단에게 2연승으로, 우승 문턱까지 도달한 이치리키 료(27) 9단의 기세는 수직 상승세다. 그동안 자국내에서만 통한다는 의미로 붙여졌던 ‘우물 안 개구리’란 별명에서조차 탈피할 태세다. 만약 이치리키 료 9단이 응씨배 우승을 확정할 경우, 일본 바둑계엔 지난 2005년 장쉬 9단이 ‘LG배 기왕전’ 타이틀 획득 이후 19년 만에 쾌거로 기록될 전망이다. 일본 바둑계의 터줏대감인 이야마 유타(35) 9단도 하향세에 접어든 분위기이지만 지난달 막을 내린 ‘제2회 란커배’에서 4강에 오를 만큼, 국제대회에서의 경쟁력은 여전하다. 이야마 유타 9단은 2010년 중후반 당시 자국내 7개 주요 기전 우승 타이틀을 모두 보유, ‘사무라이’ 바둑계에선 절대권력으로 통했던 인물이다. 현재까지 농심배에서만 8승12패를 기록 중인 이야마 유타 9단은 이번 대회에서 두 자릿수 대 승수 쌓기에 도전한다. 이 밖에 시바노 도라마루(27) 9단과 쉬자위안(27) 9단, 히로세 유이치(23) 7단 등도 이번 농심배에서 반란을 꿈꾸고 있는 인물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농심배 우승을 위해선 대회 초반부터 주도권 확보가 중요하단 의견을 내놓고 있다. 바둑TV에서 ‘제26회 농심배’ 방송 대국 해설자로 나설 박정상(37) 9단은 “자타공인의 ‘끝판왕’인 신진서 9단을 보유한 한국팀의 입장에선 신 9단 이외의 선수들이 처음부터 중국과 일본 선수들에게 최대한 승수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며 “신 9단에게 부담을 줄여준다면 한국의 이번 농심배 우승도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허재경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