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질서가 美 대선에서 출현할 것인가?

입력
2024.09.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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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세계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경제적 불확실성이 매우 커졌다. 우리의 미래 또한 국제적 흐름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이 흐름의 실상과 방향을 읽어내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지난 100년간 미국에는 두 가지 정치질서가 있었다. 먼저 뉴딜질서. 1930~40년대에 시작돼, 1950년대, 60년대에 뿌리를 내렸다. 뉴딜질서는 국가가 경제를 공익에 맞게 관리할 수 있다는 사고를 근간으로 한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무너졌다. 이후 신자유주의 질서가 등장했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은 정부의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 자본,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강조한다. 1970년대, 80년대에 형태를 갖추고, 1990년대와 2007년경까지 본격적으로 현실에서 구현됐다. 레이건 대통령이 이 질서를 설계하고, 클린턴 대통령이 핵심적으로 실행했다. 2008년 금융위기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지배적 정치질서는 정치적 사고방식을 결정한다. 그래서 반대 정파도 이를 따른다. 아이젠하워의 공화당은 1950년대 민주당이 주도한 뉴딜질서를 수용했다. 클린턴의 민주당도 1990년대 공화당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질서를 받아들였다.

신자유주의 대두에는 냉전의 붕괴도 작용했다고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게리 거스틀은 저서 '신자유주의 질서의 흥망'에서 밝힌다. 사회주의가 강성하던 시절에는 그 위협으로부터 자본주의를 방어하기 위해 뉴딜질서가 태동할 수 있었는데, 사회주의 몰락 후에는 신자유주의가 세력을 넓힐 수 있었다.

레이건은 신자유주의적 기초를 다졌다. 규제를 완화하고 정부 기능을 축소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4년 이후 신자유주의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월가 출신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연준의장 앨런 그린스펀 등이 핵심 역할을 했다. 43대 대통령 부시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은 동행한다고 믿었다. 클린턴이 시작했던 금융규제완화 정책을 유지했던 부시는 2008년 최악의 금융위기를 맞이한다. 시장 스스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국가 개입이 필요했다. 신자유주의 이념도 뿌리가 흔들렸다.

오바마는 루빈의 월가 동료들에게 위기 수습을 맡긴다. 그는 금융계 구제를 우선시했다. 금융계는 살아났지만 경제적 불평등은 악화되고 실업률은 높아졌다. 분노한 백인 노동자들 중심으로 티파티 운동이 시작된다. 트럼프는 이들을 정치적 동력으로 삼아 돌풍을 일으켰다. 경제기회를 상실한 젊은이들은 오랫동안 월가의 탐욕을 비판했던 샌더스를 지지한다. 흑인인권운동 BLM(Black Lives Matter·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세력도 샌더스에게 우호적이었다. 반면 힐러리는 신자유주의 화신이었다. 트럼프와 샌더스는 자유무역과 세계화에 반대했다. 백인 우월주의자 트럼프가 2016년 대선의 최종 승자가 됐다. 신자유주의 질서를 주도했던 엘리트들에 대한 반감의 표출이었다.

트럼프 정부의 규제완화와 감세정책은 신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지만, 자유무역과 이민의 배척은 신자유주의를 훼손한 것이다. 그는 일관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트럼프 정부는 노동자층의 경제상황을 실질적으로 개선하지도 못했다. 트럼프는 세계의 리더로서 미국의 지위를 포기하려 했다. 세계는 혼란에 빠졌다.

2020년 대선은 코로나19가 변수였다. 트럼프의 무능한 대처로 바이든이 당선된다. 바이든 정부는 그린에너지 정책 등 새로운 산업정책으로 국가의 역할을 강화했다.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지키려는 바이든 정부에는 신자유주의적 흔적이 남아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의 정책은 바이든의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트럼프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신자유주의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질서가 탄생할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당분간은 불확실성이 높아 보인다.

김동기 작가·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