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젊은이 사다리 차기

입력
2024.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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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에 한 방송국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주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의 해외 주식 투자였습니다. PD님이 한국 청년들은 왜 해외 주식에 눈을 떴는지를 물었고 전 나름의 생각을 답했습니다. 인터뷰가 다 끝나니 더 많은 생각이 휘몰아쳤습니다. 해외 주식 투자라는 일각 밑에 어떠한 빙산이 있을지 생각해봤습니다.

뉴스를 보니 힌트가 보입니다. 사다리 걷어차기가 핵심입니다. 인재라는 자원이 유일한 국가의 대통령은 정체 모를 카르텔을 운운하면서 연구 예산을 줄였고 이제야 몇 년 전 수준으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은 규제와 예산 감축으로 인해 점점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연구 사다리가 끊어진 셈입니다. 과학은 사회 생산성의 마중물인데 그 마중물이 사라진 미래에 살아갈 운명입니다.

정부는 호기롭게 의료개혁을 외치며 올해 초 의료 지원 패키지와 함께 의대 증원을 진행했습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라는 식의 일방통행식 정책 집행으로 한국 의료는 파업을 넘어서 파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돈이 많고 연줄이 있어서 상급 종합병원에 갈 수 있는 대통령의 지인들과 국회의원을 제외하면, 일반 국민은 아프면 큰일 난다는 생각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지방 청년의 사다리는 무너진 지 오래입니다. 어릴 적 본 교과서에는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양극화를 넘어 수도권 일극 체제가 됐습니다.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는 일자리가 없어서 힘들다는 지방 청년에게 서울에 가서 일하라는 참신한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지방시대를 열겠다며 호기롭게 공약을 발표한 사람은 어디 갔고 전국에 180석 넘게 자리를 갖고 있는 야당도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올해 내내 금융투자소득세가 화제입니다. 권리 보장 없이 세금부터 걷자는 국회의원들의 생각에 경악했습니다. 제도는 만들기보다 없애거나 수정하는 게 힘든데 일단 만들어보자는 주장을 보면서 왜 국민을 대상으로 사회실험을 하는가 싶었습니다. 부동산보다 허들이 낮은 주식시장으로 자산을 불리고자 하는 청년들에겐 더욱 슬픈 소식입니다. 기성세대가 만든 부동산 자산에는 세제 혜택이 늘고, 이제 자산을 만들어가는 젊은 세대가 주로 하는 주식투자에는 세금이 늘고 있는 것은 세대 간 불평등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 젊은 세대가 살아갈 한국은 이전보다 무너진 의료시스템, 더욱 저평가받는 주식시장을 가질 확률이 높습니다. 지방에 사는 청년들은 더욱 힘들 겁니다.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이런 사다리 걷어차기가 지쳐서 해외로 눈을 돌립니다. 몸은 못 가니까 돈이라도 보내고자 해외 주식을 알아봅니다. 결국 해외 투자의 근원에는 한국이 싫어서라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다리가 무너진 한국에서 나를 지킬 것은 결국 돈이라는 생각만 드니까요.

쓰러진 사다리를 다시 세우기 위해선 몇 배의 힘이 듭니다. 현 정부 여당은 억울한 면도 있습니다. 역대 정권들도 사다리를 무너뜨리거나 이미 고장 난 사다리에서 얼굴을 돌렸기 때문이죠. 하지만 억울하다고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진리로 가는 야곱의 사다리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저보다 더 어린 세대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아주 작은 사다리라도 다시 세워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구현모 뉴스레터 어거스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