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5000원에 ‘내 가수’ 얼굴 초대형으로 본다…극장 먹여살리는 ‘이것’

입력
2024.09.03 04:30
임영웅 콘서트 실황 영화 흥행 돌풍
5일간 표 판매 46억…매출 기준 박스오피스 1위
콘서트 영화 관객 늘며 영화 콘텐츠 빈 자리 채워


"영웅씨 얼굴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이렇게 왔어요."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 가수 임영웅의 콘서트 실황 영화 ‘임영웅 |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이하 ‘임영웅 스타디움’)을 개봉일에 맞춰 아이맥스 상영관의 초대형 화면으로 보러 왔다는 50대 최순옥(가명)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예매 첫날인 지난 14일 아침 7시부터 여기서 줄 서서 아이맥스관 티켓을 구했죠. 5월 영웅씨 콘서트도 두 번 다 봤고요. 평소에 영화관에 잘 오지 않는데 영웅씨 때문에 왔어요."

‘임영웅 스타디움’은 임영웅이 지난 5월 서울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콘서트 실황과 공연 제작 뒷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CJ CGV에서 단독 개봉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아이맥스관이 있는 CGV용산아이파크몰은 ‘임영웅 스타디움’의 첫 상영 시간인 오전 7시가 되기 전부터 하늘색으로 뒤덮였다. ‘Hero Generation’(영웅시대∙임영웅 팬덤 이름)이 적힌 하늘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하늘색 액세서리를 착용한 여성들이었다. 하늘색은 임영웅 팬덤 상징색이다. 같은 영화를 2회 이상 반복 관람하는 N차 관객도 적지 않았다. 네 명의 임영웅 팬과 함께 영화관을 찾은 박정하씨는 “지난해 개봉한 임영웅의 콘서트 실황 영화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은 극장에 걸린 63일간 매일 봤다”면서 “오늘은 아이맥스관에서 두 번 봤고 (상영관 3개 벽면에서 영화가 나오는) 스크린X관 등에서 3번 더 함께 볼 것”이라고 말했다.

콘서트 영화, 비싼 티켓값과 N차 관람에 수익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진격으로 영화 산업이 위기에 빠진 가운데 영화 팬이 아닌 유명 가수의 팬들이 극장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콘서트 영화가 극장가 비수기에나 개봉하던 것은 옛말. 요즘 성수기 박스오피스를 흔드는 건 콘서트 영화다.

‘임영웅 스타디움’은 여름 성수기 끝자락인 지난달 마지막 주에 개봉해 할리우드 대작 ‘에이리언: 로물루스’를 제치고 매출액 기준 주말(지난달 30일~이달 1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임영웅 스타디움’은 사흘간 누적 관객 수 8만7,000여 명으로 관객 수 기준으론 흥행 3위였으나 매출액(25억 원)에선 '에이리언'(22억 원·22만3,000여 명)을 앞섰다. 1일까지 누적 관객 수는 16만여 명으로, 역대 콘서트 영화 흥행 3위, 누적 매출액 기준으론 2위(46억여 원)에 올랐다.

‘임영웅 스타디움’이 ‘에이리언’을 매출액에서 앞지른 것은 일반 영화 관람권(1만5,000원)보다 비싼 티켓 가격 덕분이다. ‘임영웅 스타디움’의 일반관 티켓 가격은 주말 기준 2만5,000원이고 아이맥스관은 3만5,000원이다. 게다가 임영웅 소속사 요청에 따라 경로할인 등 각종 할인 대상에서 제외된다. CGV 관계자는 “티켓 가격은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한 소속사와 협의에 따라 결정된다”며 “소속사와 영화관의 수입 분배 비율도 영화마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통상 영화관과 배급사가 매출을 5 대 5로 나누는 것과 달리, 일부 콘서트 영화는 가수의 소속사가 80%까지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콘서트 영화는 가수와 소속사엔 새로운 수입원이고 극장으로선 대안 상품이다. CGV는 지난 2020년 공연 영상, 게임, 스포츠 중계 등 영화를 대체할 대안 콘텐츠 확보를 위해 아이스콘 사업 부문을 신설했다. CJ ENM은 ‘임영웅 스타디움’을 공동 제작하는 등 콘서트 영화 제작에 공을 들이고 있다. 후발 주자인 롯데시네마도 2022년 관련 부서인 ‘롯시플’을 신설했다. CGV의 아이스콘 콘텐츠 관람객은 2020년 33만 명에서 지난해 90만 명으로 급증했다. 한 중견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콘서트 영화 제작비는 상업영화 평균 제작비의 약 10분의 1에도 못 미치고 고정 수요층인 팬덤을 관객으로 확보할 수 있어 손실 부담이 훨씬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수 상영관으로 몰리는 콘서트 영화 관객

콘서트 영화 관객들은 특수 상영관에 몰리는 것이 특징이다.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만난 50대 관객 황연숙씨는 “울산에 살지만 아이맥스관에서 다른 팬들과 함께 임영웅을 응원하며 보는 분위기를 즐기러 왔다”며 “티켓 가격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임영웅 스타디움'을 트는 일반 상영관은 주말에도 회당 관객 수가 10명도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1일 오후 12시 20분 광주 CGV광주금남로의 ‘임영웅 스타디움’ 상영관의 관객은 단 2명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상영관을 찾은 박은정(46)씨는 “일반 영화에 비해 티켓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했다.

콘서트 영화의 흥행은 극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 콘텐츠 제작자나 플랫폼 사업자에게 적잖은 단서를 준다. 황재현 CGV 전략지원담당은 “코미디 영화, 콘서트 영화 등 관객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나 아이맥스, 스크린X 상영 영화 등 기술 진화를 통해 가치를 끌어올린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 “영화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와 즐거움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극장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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