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근무복이나 현대화됐지, 간호 문화는 60년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어떻게든 간호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간협) 간호법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은 한국에서 간호법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간협 회장을 네 번 역임했고, 19대 국회에선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비례대표로 활약했다. 간호사 업무를 '간호 또는 진료 보조'로만 정의했던 의료법을 2015년 개정을 통해 '환자 관찰, 간호 판단, 간호 교육 및 상담, 간호조무사 지도' 등으로 구체화한 것도 신 위원장이다. 2일 서울 중구 간협 건물에서 만난 신 회장은 "간호법 통과는 끝이 아닌 시작"이라며 "간호사 처우 개선은 곧 국민들이 받는 의료서비스 질 제고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1976년 간호사가 된 신 위원장은 1년간 이대 동대문병원에서 근무한 뒤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 간호사 생활은 신세계였다. 그는 "미국은 그때도 간호사당 환자 수가 1대 7, 중환자가 있으면 1대 5였다"며 "학교에서 배운 기본 간호를 미국에 가서야 제대로 다 해봤다"고 말했다. 3교대가 원칙인 한국과 달리 희망 근무시간을 말하면 최대한 반영해줬다. 신 위원장은 "데이(오전근무), 이브닝(오후근무), 나이트(밤근무) 중 무엇을 가장 선호하냐길래 잘못 들은 줄 알았다"며 웃었다. "한국에 있을 땐 나이트 근무가 너무 힘들어서 우울했는데 그걸 안 할 수 있으니 참 좋았다"는 게 그의 회상이다.
간호교육학 박사학위를 따고 1992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간호 현장은 바뀐 게 없었다. 여전히 후배 간호사들은 1인당 20, 30명이 넘는 환자를 보고 있고 3교대에 지쳐 퇴직과 이직도 잦았다.
간호사 근무환경을 개선하려면 두 가지를 해결해야 한다고 신 위원장은 진단했다. 간호사 1명당 돌보는 환자 수를 제한하는 것이 그중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간호사 업무를 명확히 하는 것. 병원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의사 일을 간호사에게 시키고, 간호사 일은 간호조무사에게 시켰다. 의료법에 간호사 업무가 '의사의 진료 보조'라고 두루뭉술 서술돼 있는 게 문제였다. 이를 해결하려면 간호사 업무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신 위원장은 "2008년 간협 회장에 당선되면서부터 머릿속에 간호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혹자는 의료법 안에서 간호사 업무를 정의하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신 위원장이 보기엔 간호법과 의료법은 성격이 아예 달랐다. 그는 "의료법은 의사의 의료기관 개설 관련 내용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고 말했다. 간호법이 생기면 간호사가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는 반대 논리도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의료법에 따라 간호법을 만들었고, 의료법에는 간호사가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항목이 없다"며 "간호법 때문에 의료기관이 생긴다는 건 타당성이 없는 말"이라고 했다.
신 위원장은 간호법 통과는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간호사가 할 수 있는 보건활동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로 했고, 진료지원(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보건복지부령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신 위원장이 가장 먼저 추진하고 싶은 건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규정이다. 간협은 환자 중증도에 따라 간호사 한 명이 5~7명 정도를 간호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는 "그동안 그림자처럼 지냈던 PA 간호사도 이젠 제대로 교육받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된다"며 시행령이 통과되면 현장 간호사들도 간호법 통과를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간호사 처우 개선은 곧 의료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진다고도 강조했다. 신 위원장은 "1인당 환자 수를 줄이면 간호간병서비스도 확대될 수 있다"며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간병비가 하루에 2만 원 정도니, 간병비로 인한 국민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초고령사회에서 간호법의 중요성이 더 부각될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신 위원장은 "시민들의 필요에 따라 방문간호 같은 시범사업도 확대될 필요가 있다"며 "국민에게 좋은 제도를 시행해야지, 공급자에게 좋은 제도를 만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2008년 협회 회장이 된 뒤로 장장 16년을 간호법 통과에 매달린 셈이지만, 신 위원장은 막상 법안이 통과될 땐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동료들과 함께 국회 방청석에 앉아 현장을 지켜본 그는 "기분이 무지하게 좋을 줄 알았는데 확 와닿지 않더라. 이게 진짜인가 싶었다"고 했다. 다음 목표는 이미 정해졌다. 간호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마련되는 대로 간호사들이 처한 현실을 알리는 행동에 나설 참이다. 신 위원장은 "간호법 근거하에 병원이 운영되고 간호사들이 간호하는 게 내 소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