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EU “중국이 해상 안전 위협”… 필리핀서는 “두테르테 6년 낭비” 한탄

입력
2024.09.03 08:00
호주·일본 등 미 우방도 중국 비판 대열 합류
중국, 필리핀과 충돌 당시 미국 항공기 공개

중국과 필리핀이 남중국해 스플래틀리군도(중국명 난사군도)에서 잇따라 충돌한 가운데 서방 국가가 한목소리로 중국 비판에 나섰다. 중국은 미국이 해상 긴장 단초를 제공했다며 책임을 돌렸다. 필리핀에서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중국과 밀착하며 해군력을 키우는 데 미흡했던 까닭에 현재 중국의 해상 도발에 취약하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2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전날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고위대표 명의 성명을 내고 “EU는 남중국해 내 사비나(중국명 셴빈자오·필리핀명 에스코다) 암초 인근 해역에서 합법적인 필리핀 해상 작전을 방해한 중국 해안경비대의 위험한 행동을 비난한다”며 “중국은 국제법에 따라 모든 국가가 누릴 수 있는 항행과 비행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필리핀 주재 일본과 호주 대사 역시 자신의 엑스(X)에서 “무력이나 강압으로 현상 유지를 변경하려는 중국의 일방적 시도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과 필리핀 해경은 지난달 남중국해 최대 분쟁 해역인 스플래틀리군도에서 다섯 차례 충돌했다. 특히 사비나 암초 인근에서만 2주간 네 번(19일 25일 26일 31일)이나 부딪혔다. 양측은 상대국 해경이 고의로 자국 선박을 공격했다고 주장한다.

이후 필리핀의 동맹국인 미국은 지난달 31일 “중국이 불법으로 해상 영토 주권을 주장하면서 공격적인 행동으로 다른 나라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필리핀을 두둔했다. 이에 더해 미국 우방인 호주와 EU, 일본까지 줄줄이 필리핀 손을 들어준 셈이다.

중국은 미국이 필리핀의 도발을 부추기고 있다고 반박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2일 논평 기사에서 “미국이 대립을 부추기면서 필리핀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EU와 일본 등 남중국해 당사국이 아닌 제3국이 해상 갈등에 개입하지 말라고 엄포도 놨다.


중국 CCTV 모회사 중앙방송총국은 자사 웨이보 계정에 “지난달 31일 중국 해경과 필리핀 해경 간 충돌 당시 상공에서 미국 해상초계기 P-8A를 포착했다”며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미국이 배후에서 필리핀의 과감하고 위험한 도발을 부추겼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필리핀 내에서는 친중 성향 두테르테 전 대통령 재임 시절 해군력 강화를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한탄도 나오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전했다. 필리핀 국방 분석가 호세 안토니오 쿠스토디오는 “우리는 6년(두테르테 재임 기간)을 낭비했다”며 “중국과 맞붙으려면 해군 자립을 추진하고 함선 제작 등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