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끄러운 ‘성차별 포럼’

입력
2024.09.02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미국 뉴욕대 심리학과 타일러 필립스 교수가 실시한 실험이 있다. 사람들에게 “여성이기 때문에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 “남성이기 때문에 직업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다른 서술이지만, 실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전자와 달리 후자 상황에 대해 사람들은 그게 차별임을 잘 안식하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전문가들조차 그랬다.

□ 사회심리학자 박진영씨는 이 연구 결과에 대해 “차별에는 그로 인해 이득을 보고, 더 많이 선택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며 “그런데도 사람들은 특권이나 혜택의 존재를 불평등, 차별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선택된 사람들, 즉 장관, 국회의원, 교수, 기업 임원, 방송 등장인물, 언론 지면의 필자, 혹은 세미나 연설자 등에서 특정 집단(성별·학벌 등)이 두드러질 때, 선택되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차별’을 인지하는 건 그러므로 필수적인 감각이라 하겠다. 박씨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차별의 존재를 암시한다”고 짚었다.

□ 지난주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가 3일 통일부 주최로 열리는 ‘2024 국제한반도포럼’에 불참한다고 공표했다. 그는 2021년까지 주북한 영국대사를 지낸 한반도 전문가이다. 그런데 자신을 포함해 포럼 연사(Speaker)로 참여한 19명이 모두 남성인 것을 보고 ‘성차별’을 인지했다. 주한 영국대사관은 “성평등의 가치를 지지한다” “참여자들이 다채로운 견해들을 공유할 때 행사가 더욱 빛날 수 있다”고 밝혔고, 진 매켄지 영국 BBC 서울특파원 등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소식을 알렸다.

□ 나라 망신을 제대로 시킨 통일부는 “여러 사유로 여성 전문가들이 참석 불가를 통보해 불가피하게 다수의 남성 연사로 구성됐다”고 ‘여성집단’으로 화살을 돌렸다. 그러다 비판이 커지자 전체 연사를 27명으로 늘려 여성 패널 7명을 추가했다. 통일부 문제만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장에 남녀 비율이 비슷한 미국 측 참모들과, 거의 남성뿐인 한국 참모들을 담은 사진이 비교된 적도 있다. 언제까지 부끄러움은 국민 몫인가.

이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