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만났지만 '빅딜'은 없었다. 쟁점 현안인 채 상병 특별검사법을 둘러싼 해법을 찾지 못했고 금융투자소득세, 25만 원 민생지원금 지급에 대한 입장 차도 여전했다. 다만 민생 현안에는 일부 물꼬를 텄다. 공통공약 추진을 위한 협의기구를 운영하고 반도체·인공지능(AI) 산업 육성 법안을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11년 만에 성사된 여야 대표 회담은 이처럼 속 시원한 성과 없이 추가 협의로 공을 넘기며 숙제를 남겼다.
이날 국회에서 100여 분간 진행된 여야 대표 회담은 양당 정책위의장과 수석대변인이 배석해 3+3 형식을 갖췄다. 양측이 공동 발표문에 담은 민생 공통공약 협의기구는 지난 총선의 약속을 지키려는 것이다. 당시 여야는 모두 △요양병원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 △예금자 보호 한도 1억 원으로 상향 △배우자 출산휴가 1개월 유급 의무화 △ 소상공인 금융지원 확대 △근로자 연말정산 기본공제 확대 등을 공약했다. 아울러 반도체와 AI 산업, 국가기반 전력망 확충을 위한 지원 방안도 적극 논의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가계와 소상공인 부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지원 방안을 적극 강구하기로 했다. 이 외에 △맞벌이 부부의 육아휴직 기간 연장 △딥페이크(AI 기반 이미지 합성 범죄) 처벌과 예방을 위한 제도적 보완 △정당정치 활성화를 위한 지구당 부활 등에도 속도를 내기로 뜻을 모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번 대표 회담이 국회 정상화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면서 “여야 간 큰 이견이 없는 민생 법안에 대한 민생 패스트트랙 국회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같은 일부 성과에도 불구, 간극은 여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두 차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이 대표가 "국민의힘 요구 조건을 적극 수용하겠다"며 의지를 보였지만 한 대표는 "당내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전 국민 민생지원금 25만 원 지급, 내년으로 예정된 금투세 시행을 놓고도 뚜렷한 진전이 없었다. 다만 금투세는 주식시장 활성화 방안과 함께 시행시기를 좀 더 논의하기로 여지를 남겼다. 의료공백 사태와 관련, 의료계가 요구하는 ‘2025학년도부터 의대정원 증원 백지화’는 수용이 어렵다는 데 뜻을 같이했지만 뾰족한 대책은 내놓지 못했다.
여야 대표 회담은 2013년 이후 11년 만이다. 한 대표와 이 대표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급물살을 탔다. 한 대표는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히는 이 대표와 일대일로 마주해 체급을 끌어올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 대표 역시 민생을 챙기는 대안정당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영수회담 성사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여야 대표는 향후 수시 대화에 합의했지만 국회 상황이 녹록지 않다. 2일부터 시작되는 9월 정기국회는 곳곳이 지뢰밭이다. 야당은 긴축 기조가 뚜렷한 2025년도 예산안 심사에 더해 채 상병 특검과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등 윤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최근 밝힌 국민연금 개혁 청사진에 대해서도 이견이 첨예하다.
이처럼 불편한 기류를 반영하듯 윤 대통령은 2일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현직 대통령의 첫 사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현희 민주당 의원의) '살인자' 망언을 서슴지 않고 사과도 없다"면서 "특검, 탄핵을 남발하는 국회를 먼저 정상화시키고 초대하는 것이 맞다"고 불참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