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이성이나 교사 등을 대상으로 허위 성착취물을 만드는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성범죄가 10대 청소년들 사이에 무분별하게 제작·유포되고 있는데 정작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은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한 채 형식적 강의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교육기본법 및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등학교는 연간 15시간의 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 중 초등학교는 성폭력, 가정폭력 예방 교육이 각각 1시간씩 총 2시간,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성매매 예방 교육까지 총 3시간이 의무다.
그러나 실효성은 떨어진다. 현행 성교육은 표준화된 지침 없이 시도교육청이 교육 내용과 형식을 각자 관할하고, 학교장 재량으로 학교 사정을 고려해 운영된다. 전문 교육을 받지 않은 교과목 교사가 양성평등,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제각각 가르치는 경우도 태반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 응답자의 92%가 '성평등 관련 교육과정의 목적과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수업을 준비하기 곤란하다'고 답했다.
교육 당국이 2015년 교사를 상대로 배포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도 그 이후 개편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표준안 내용을 살펴보니 초·중·고등학교 내내 남녀 생식기관, 임신 및 출산 등에 대한 내용은 반복되는 반면 새로운 유형의 성 관련 주제는 부실하다. 표준안 마련 당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교제 폭력'이 고교 과정에 반영된 정도다. 사이버 성범죄에 대한 내용은 '인터넷 음란물' '대중매체 속 성상품화' 수준에 그쳤고, 최근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딥페이크 교육은 전무하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발생한 딥페이크 범죄 피해자의 59.8%, 가해자의 75.8%가 10대로 집계됐는데, 관련 교육은 제자리걸음인 셈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행 교육자치법 등에 따라) 교육부가 성교육 운영에 구체적인 지침을 내리긴 어렵고, 성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선에서 관여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보다 구체적인 성교육이 저학년부터 규칙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휴대폰을 통해 왜곡된 성 의식에 상시적으로 노출되고 이를 놀이로 인식해 동조하는 것이 딥페이크 범죄의 핵심"이라며 "성교육으로 분별력을 길러주고 교사에게 떠맡기는 대신 학부모 대상 교육도 마련해 학교와 가정 공동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행 디지털 관련 교육은 문해력에 집중된 경향이 있어 딥페이크 등 범죄와 관련된 자료를 제작해 올해 10월 정도에 배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주말 사이 서울 곳곳에선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지난달 31일 종로구 집회엔 진보당원 및 시민 50여 명이 참석해 "폭력을 장난이나 실수나 호기심이라며 봐주거나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날인 30일엔 서울여성회 등 단체 20여 곳이 강남역 인근에서 비슷한 집회를 개최해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