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돋우는 '목포 구미(九味)'를 아십니까

입력
2024.09.04 05:00

몇 년 전부터일까. 전남 목포시가 '맛의 수도(首都)'를 자처했다. 예로부터 '남도의 밥상은 어딜 가나 잔칫상'이라고 할 만큼 미식 문화가 발달한 전라도에서 감히 수도를 운운하다니. 다소 작위적 요소가 느껴지긴 하지만 어쨌거나 맛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곳이 목포다. 그런 목포시가 목포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할 아홉가지 음식을 내놨다. 이름하여 '목포 구미(九味)'다.

일미(一味)는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세발낙지다. '갯벌 속의 인삼'이라는 세(細)발낙지는 발이 가늘어서 붙은 이름이다. 크기가 작아서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아 통째로 먹어야 제맛이다. 낙지는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잡히지만 세발낙지만은 목포 영암 무안 신안 등지에서만 잡히는 '지역 특산품'이다. 요리로는 연포탕, 회무침, 낙지비빔밥, 갈낙탕, 낙지탕탕이, 호롱구이, 낙지초무침 등이 있다.

"지옥 같은 향기, 천국 같은 맛"이라 불리는 홍어삼함이 이미(二味)다. 홍어에 삶은 돼지고기를 올려 묵은 김치에 싸먹는 홍어삼합은 구릿한 냄새와 톡 쏘는 맛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 목포 사람들은 "냄새 때문에 못 먹겠다면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된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홍어의 진미를 아는 사람이 먹기에도 부족할 판에 어중이떠중이에게 시식 기회를 줄 필요는 없다는 자부심이다. 어떤 음식도 홍어만큼 정신을 깨우는 짜릿함을 선사하지는 못한다.

감칠맛을 자랑하는 민어회가 삼미(三味)다. 수심 40~120m의 진흙 바닥에 주로 서식하는 민어는 회로 먹으면 쫄깃하고 달콤하다. 목포 민어회는 다른 지역과 달리 회뿐만 아니라 껍질, 부레, 뱃살, 지느러미까지 한상 가득 푸짐하다. 또 1주일 정도 갯바람에 말린 후에 찜으로 조리하거나 쌀뜨물에 민어, 멸치, 무, 대파 등을 넣고 탕으로 요리하면 그 맛이 또한 일품이다.

사미(四味)는 꽃게살을 정성껏 발라내어 붉은 양념에 버무려낸 꽃게무침이며, 오미(五味)는 10월쯤 산란기를 앞두고 있는 가을 목포 먹갈치에 감자와 호박, 말린 고구마 줄기 등을 넣어 칼칼하고 자작하게 끓여 낸 갈치조림이다. 이렇게 5개 음식이 목포에서 손꼽히는 맛인데, 최근엔 여기에 4개 음식이 더해졌다.

살짝 얼려 회로 먹는 맛이 일품인 병어회가 육미(六味)요, "썩어도 준치"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맛이 좋은 준치를 새콤달콤하게 무친 준치무침이 칠미(七味)다. 준치는 한자로는 진어(眞魚) 또는 시어(鰣魚)라고 한다. 예부터 새가 물에 빠져 조개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준치도 새가 변하여 준치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팔미(八味)는 "못생겨도 맛만 좋다"는 아귀탕(찜)이다. 예전엔 거들떠보지도 않아 거름이나 사료로 썼던 아귀는 지금은 "못생겼지만 이빨밖에 버릴 게 없다"는 평가를 받는 고급 생선이 됐다. 아귀는 생김새와는 달리 맛이 담백하다. 국이나 찌개를 끓이면 아주 시원하고 콩나물을 듬뿍 넣어 맵게 찜을 하기도 한다. 담백한 맛으로 즐기는 아귀탕이나 아귀수육도 별미이다.

남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말린 우럭으로 끓인 담백하고 개운한 우럭간국이 구미(九味)다. 우럭은 예로부터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렸던 어류다. 맛도, 육질도, 영양도 만점으로 횟감의 대명사로 불린다. 육질이 희고 부드러운 탄력성과 함께 쫄깃쫄깃하면서도 지방이 적어 감칠듯한 담백한 맛이 배어 있어서다. 부드럽고 탄력성이 좋은 흰살 생선의 육질로 고소하면서 개운한 맛이 백미인 우럭은 최고의 탕으로 인기가 좋다.




안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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