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문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로, 머리가 세 개라서 목숨도 세 개라고 하죠. 하지만 케르베로스의 세 머리는 각각 자아도 강하고 탐욕이 많아 음식을 두고 늘 싸운다고 합니다. 13세기 이탈리아 작가 단테는 '신곡'에서 케르베로스에 대해 아무리 먹어도 하나의 몸을 만족시키지 못해 세 개의 머리는 평생 서로 물고 뜯으며 살아간다고 묘사합니다.
갑자기 웬 신화 얘기냐고요? 최근 개편된 외교안보라인 인사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곳곳에 실세가 넘쳐 납니다. 선수층이 두꺼워졌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지만, 사실 우려가 더 큽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윤석열 대통령은 외교안보 사령탑인 국가안보실장에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발탁했습니다. 군 출신이 안보실장에 기용된 건 2017년 박근혜 정부 당시 김관진 전 실장이 교체된 이후 7년 만입니다.
특이한 건 외교안보 특별보좌관직을 신설한 것인데요. 장호진 전 안보실장을 이 자리로 옮겼습니다. 대통령 직속입니다. 이를 놓고 윤 대통령의 '특명조직', '리베로', '외교 별동대' 등 다양한 수식어가 나붙었습니다. 안보실장이 외교안보를 총괄하지만, 장 특보 또한 윤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적잖은 역할을 맡는 자리입니다. 이에 더해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실세'로 불려온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윤 대통령의 '복심'인 경호처장을 맡다가 국방부 장관에 지명된 김용현 후보자까지 저마다 '윤심'을 등에 업은 것으로 평가받는 쟁쟁한 인사들이 외교안보라인에 즐비합니다.
윤 대통령은 사흘 전 국정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국방 인사를 새 국가안보실장으로 발탁하고, 외교안보 정책의 전략성을 높이기 위해 외교안보 특별보좌관직을 신설했다는 설명입니다. 국가안보실은 외교안보 조직운영을, 특보는 외교안보 전략 기획 및 대외공보활동에 주력한다는 접근이죠.
그래서 일각에서는 본격적인 한미일 3국 안보협력체계를 가동하기 위해 '국방'에 주력한 외교안보 컨트롤타워 재편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다만 국방부 장관을 지낸 신 실장은 한미동맹 강화와 한일 안보협력을 강조해온 대표적 인사입니다. 반면 외교전문가는 아닙니다. 그는 '우크라이나 지원' 인터뷰 발언으로 러시아와 외교마찰을 초래해 논란을 빚기도 했죠. 국방부는 오역이었다고 해명했지만, 한러 양국이 말폭탄을 주고받은 후에야 뒤늦게 수습에 나섰습니다.
이에 장 특보는 신 실장의 단점을 보완해줄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이 안보실장을 맡던 시절, 외교정책 및 외교부 인사는 주로 주철기 당시 외교안보수석이 주도했던 것처럼 말이죠.
실제 외교전략과 정책에 대한 주도권이 신 실장보단 장 특보에게 있는 듯한 장면이 눈에 띕니다. 장 특보는 인사 발표 사흘 만에 미국 워싱턴으로 날아가 한미동맹을 조율했고, 지난달 21일에는 한국과 체코 간 협력관계 심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성태윤 정책실장과 공동으로 주재했습니다. 과거 특보의 역할에 비해 꽤 광폭인 셈입니다.
이처럼 각각 국방과 외교분야 전문가인 신 실장과 장 특보가 윤 대통령을 좌우로 보필하고 있으니 든든한 라인업입니다. 그런데 관계부처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당혹해하는 기류 속에 일부 관료들은 불안해하는 모습마저 엿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한 전직 외교관은 국가안보실과 외교안보특보실 또는 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과 국가안보실 등 외교안보 이원화 체제를 추진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 컨트롤타워 체제 모두 '옥상옥' 구조로, 비상시 기민한 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부작용은 컸습니다. 2015년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 사건 때가 대표적이죠. 국방부가 지뢰폭발 사건을 브리핑할 때 통일부는 북한에 고위급 회담을 제안하는 '엇박자'를 노출했으니까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의를 열었지만 혼선을 막지 못했습니다. '엄정 대처하겠다'는 청와대 입장이 사건 발생 일주일 만에 나올 정도로 대처가 느렸습니다.
이처럼 분야별 전문가를 포진해 효율성을 높이려던 조직개편과 인사가 '옥상옥'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한 당국자의 발언입니다. 최근 외교가에 회자되는 문제점을 떠올리게 합니다. 외교안보부처 장관에게 제때 보고하지 않아 보직이 꼬였다는 관료. 안보실장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사가 보류된 직원. 실세 고위직 인사의 측근으로 알려져 인사철마다 하마평에 오르는 관료 등등. 신원식·장호진·김태효·김용현 등 윤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실력자가 즐비하지만 이들의 역할 분담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이들을 떠받치는 외교안보라인의 실무자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로 인해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지거나 과잉 충성경쟁으로 흐른다면 외교안보 사안의 특성상 국익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죠. 이미 고위급 인사 간 입장 차로 인해 현안 대응에 차질을 빚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윤석열 정부 2년 3개월 동안 안보정책을 총괄하고 조율하는 안보실장은 네 차례(김성한-조태용-장호진-신원식) 바뀌었습니다. 평균 재직기간은 9개월에 불과합니다. 그사이 대통령과의 거리가 더 가까운 이른바 '2인자'들의 존재감이 더 부각되면 지휘체계는 흔들리고 자칫 갈등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인사제청권과 부처의 정책이행권을 갖고 있는 장관까지 더하면 배를 저어야 할 사공은 더 많아질 수밖에 없지요.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을 넘어 케르베로스의 세 머리, 아니면 그 이상의 머리들이 다투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가장 우려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지나친 기우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잦은 조직개편과 옥상옥 구조로 인해 긴급사태가 발생했을 때 허둥지둥하다 골든타임을 놓친 정부의 모습을 여러 차례 봤습니다. 알력다툼으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있었지요. 따라서 조직개편과 인사발표로 끝난 게 아닙니다. 외교안보라인의 지휘체계를 새 단장한 만큼 힘을 실을 곳에는 확실히 해주고, 반대로 힘을 빼야 할 곳은 경우에 따라 뒤로 물려야 합니다. 그래야 전략과 정책을 짜는 과정에서 책임 주체가 한층 명확해지고 조직운영의 효율성도 높아질 것입니다. 외교안보라인의 각 조직과 부처가 서로 자기만 살겠다고 다투는 케르베로스가 아니라, 역할과 목표를 공유하며 이익의 조화를 극대화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