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만으로 탄핵 못 한다"는 헌재... 이재명 수사검사 4인 탄핵도 어려울 듯

입력
2024.08.3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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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섭 기각 결정으로 본 헌재 잣대]
헌재 "일시 장소 등 전혀 기재 안 돼" 지적
탄핵 위해선 정확한 사실관계 '특정' 요구
검사 4인 탄핵소추안도 전언 등 의혹 위주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한 헌법재판소는 △사실관계 소명이 없는 단순 의혹만을 이유로 공직자를 탄핵할 수 없고 △탄핵 사유에 대한 입증 책임도 국회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헌재가 제시한 이 두 가지 '탄핵 잣대'를 적용해 볼 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수사했던 검사 네 명에 대한 탄핵소추도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 헌재가 공개한 '이정섭 탄핵사건' 결정문에 따르면, 헌재는 ①문제 행위의 일시·장소·대상·상대방·방법 등 기초적 사실관계가 구체적이지 않은 점 ②직무집행과 관계없는 행위인 점을 문제로 짚었다. 헌재는 소추사유 특정 부분에서 '전혀'라는 표현을 9회 사용하며 "형식적 적법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탄핵 남발'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헌재는 소추의결서, 첨부자료, 준비서면 등에 문제 행위의 일시·대상마저 특정하지 못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 검사 소추사유 중 골프장 예약 편의 제공 의혹에 대해 "구체적 일시,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검사 등이 전혀 기재돼 있지 않다"며 "언제 어떤 행위가 소추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범죄경력 무단 열람 △처남 마약 사건 수사 무마에서도 같은 평가가 나왔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증거는 소송 당사자들이 제시하는 것이 사법의 기본 구조"라며 "증거도 없이 소문이나 의혹만으로 탄핵을 하고, 헌재가 알아서 하라는 것은 사법제도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이번 헌재 결정을 보면 민주당이 추진 중인 강백신·김영철·엄희준·박상용 등 검사 4명에 대한 탄핵 결과도 예상할 수 있다고 본다. 민주당 검사 탄핵안에는 △장시호를 통한 이재용 재판 위증교사 의혹(김영철)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위증교사 의혹(엄희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회유 의혹(박상용) 등이 담겨 있다.

이 중 '술자리 회유' 의혹은 헌재 본안 판단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탄핵안에는 장소만 '수원지검 1313호 영상녹화 조사실'이라고 적혔을 뿐 날짜와 시간 등은 특정되지 않았다. 검찰이 출정 기록 등을 근거로 의혹을 반박하자, 시기는 기재하지 않고 장소만 적은 것으로 보인다.

박 부부장검사와 강백신 성남지청 차장검사, 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탄핵안에는 '피의사실공표' 혐의에 대해 해당 검사가 수사한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를 근거로, 피의사실 공표가 한 문장으로만 간략하게 기재돼 있다. 각 사건별로 검사들이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전달했는지는 없다. 이성윤 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검사 대변 의혹'도 한 문장에 불과하다. 사건 발생 일시·장소를 위법 행위의 일시·장소로 특정하긴 했지만 "탄핵을 빙자한 망신 주기"라는 비판까지 있다.

그나마 헌재가 '이정섭 탄핵소추'에서 '형식'을 넘어 사안의 '본질'까지 판단한 부분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뇌물 혐의 증인 사전 면담 의혹이다. 하지만 "헌법과 공무원법상 의무 위반"이라고 별개 의견을 낸 김기영·문형배 재판관마저도 "그 위반이 피청구인을 파면할 정도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결국 야권이 제기한 검사 4인의 의혹에서도 ①의혹을 구성하는 '사실관계'가 정확한지 ②사실관계가 맞다면 그것이 탄핵(파면)까지 시킬 일인지, 이 두 가지 요건을 연속으로 만족시켜야 헌재가 탄핵을 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전직 고위 간부는 이를 근거로 "탄핵사유를 구체적으로 드러낸 증거나 진술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회가 검사 4인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켜도 헌재에서 인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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