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의 아들" 성착취 목사에 필리핀 골머리… 경찰 3000명 투입도 허사

입력
2024.08.31 04:30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정신적 조언자’
12~25세 여신도 상대로 성범죄 자행

필리핀 정부가 아동 성착취·인신매매 등 혐의를 받는 대형교회 목사의 신병 확보조차 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력 3,000여 명을 투입해 대대적 검거 작전을 벌였지만, 추종자들에게 가로막혀 교회 내부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해당 목사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의 친구이자 정신적 조언자인 까닭에 사건은 정치적 문제로까지 번지는 분위기다.

10·20대 여성 성착취 혐의

30일 필리핀스타와 인콰이어러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필리핀 경찰청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 60여 명이 남부 민다나오섬 다바오시 대형 교회 단지 ‘예수 그리스도 왕국’에서 아폴로 퀴볼로이(74) 목사 체포 작전을 수행하던 중 신도들과 충돌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퀴볼로이는 이 단지 설립자다. 1985년 필리핀에 처음 교회를 세웠다. 방송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세력을 넓혀 현재 신도가 전 세계 200개국에 걸쳐 700만 명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다바오시에 위치한 ‘왕국’은 30만㎡ 규모 거대 신앙촌으로, 교회와 학교 격납고 등 건물이 40개에 달하며, 공항으로 바로 통하는 도로마저 연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도 교회 본부를 두고 있다.

퀴볼로이는 필리핀과 미국에서 스스로를 ‘신의 아들’로 부르고, 자신을 거부하면 ‘영원한 지옥’에 빠질 수 있다고 협박하면서 수십 년간 12~25세 여성 신도를 성적으로 착취한 혐의를 받는다. 2021년 아동 성매매와 결혼·비자 사기, 돈세탁, 현금 밀반입 등 혐의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연방검찰에 의해 기소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두테르테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그의 권력을 뒷배 삼아 영향력을 발휘했다.

일주일 가까이 대치 이어져

필리핀 수사 당국은 2022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정부 출범 이후에야 퀴볼로이 추적을 본격화했다. 올해 4월 경찰이 퀴볼로이 및 공범 4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를 시도했지만, 신도들이 입구를 막고 저항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경찰은 지난 25일 교회에 경찰 2,000명을 배치하며 체포영장 재집행에 나섰다. 교회 내에 퀴볼로이가 은신해 있을 가능성에 대비, 콘크리트 뒤 인기척을 감지할 수 있는 장비까지 동원했다고 현지 ABS-CBN은 전했다.

그러나 두 번째 진입 시도 역시 신도 수백 명에 의해 가로막혔다. 일부 신도가 돌을 던지거나 칼을 휘두른 탓에 경찰 측 부상자가 속출했고, 대치 과정에서 신도 한 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하기도 했다. 이후 정부가 경력 1,000여 명을 더 증원했지만 일주일 가까이 대치 상태만 이어지고 있다.

추가 충돌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필리핀 경찰청은 “퀴볼로이가 여전히 시설 내 지하 벙커에 숨어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를 체포할 때까지 영내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필리핀 항소 법원도 30일 퀴볼로이와 종파 이름으로 등록된 계좌 및 부동산 등 자산 동결 연장 명령을 내리며 재정 압박에 동참했다.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자 필리핀 복음주의교회총연합회(PCEC)는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성명을 내면서 퀴볼로이와 공범에게 자수를 촉구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 측은 거세게 반발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과 아들 서배스천 두테르테 현 다바오 시장은 한목소리로 “경찰이 적법 절차를 어기고 공권력을 남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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