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실로 많은 동물을 길들이려 시도했다. 그러나 성공한 것은 개와 고양이뿐이다. 맹수를 길들일 수 있다면 멋질 것이라는 생각은 귀족이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으리라. 그러나 이는 번번이 실패했다. 어려서부터 먹이를 줘도 기분 나쁘면 바로 돌변하는 게 맹수기 때문이다. 중동에서는 치타를 길들이지만 이런 경우 치타는 생식 능력을 잃는다.
인간에 대한 충직과 믿음직스러움은 고양이가 개를 따를 수 없다. 영화 '하치 이야기'나 만화 '하얀 마음 백구' 등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되리라. 이 작품은 주인을 기다리다 죽은 하치와 먼 곳에서 주인을 찾아온 백구의 이야기기 때문이다.
개가 늑대로부터 분화돼 인류가 내민 손을 잡은 것은 2만∼4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이후 개는 인간과 더불어 지구 전역에서 번성한다.
그러나 개가 인간과 함께한 기간의 대부분은 영리한 가축이었지 반려동물은 아니었다. 반려동물이 되기 위해서는 이름이 있어야 하는데, 의외로 특징적인 이름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백구, 흰둥이, 황구, 누렁이, 검둥이, 바둑이 등의 이름이 있었지만, 이건 사실 이름이라기보다는 색깔에 따른 분류 명칭이다.
한자 백구(白狗)나 황구(黃狗)는 흰 개와 누런 개라는 뜻이다. 즉 흰둥이나 누렁이와 같은 말이다. 검둥이는 검은 개라는 뜻이며, 바둑이는 바둑판의 검은 돌과 흰 돌이 섞여 있는 것처럼, 얼룩이라는 의미다. 우리가 소를 가리킬 때 누렁소, 얼룩소, 검은 소(흑우) 등으로 부르는 것과 같다. 즉 개가 많다 보니 좀 더 다양하게 불렸을지언정 딱히 이름이랄 것은 없었다.
동양에서 개가 고유명사인 이름을 가진 것은 통일신라의 고승 김지장(혹 김교각, 696∼794)에 대한 기록이 가장 빠르지 않을까? 왕자로 알려진 김지장은 당나라 유학길에 선청(혹 제청)이라는 개를 데리고 갔다. 외롭고 험한 구도의 유학길에 동반자로 삼고자 한 것이다. 의미로도 딱 반려동물인 셈이다.
김지장의 생애를 그린 '지장구화수적도(地藏九華垂迹圖)'를 보면, 선청의 충성스러운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김지장이 구화산에서 수행하며 도량을 개척할 때, 호랑이가 나타나자 주인을 위해 물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지장은 중국 불교에서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평가받는 고승이다. 그런데 이 김지장 곁에는 언제나 선청이 함께 묘사되곤 한다. 이런 점에서 동아시아 반려동물 문화의 시작은 김지장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