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와 엔비디아

입력
2024.09.0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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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 T-800은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있다. 그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선글라스를 낀 채 긴 산탄총을 한 손으로 다룬다. 로봇보다 더 로봇 같은 근육질의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무시무시한 로봇 연기를 펼친 영화는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이다. 1991년 개봉한 SF 액션 영화로, 시간 여행과 인공지능, 인간과 기계의 대립을 주제로 다룬다. 당시 혁신적인 특수 효과와 강렬한 액션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난입한 회사가 있다. 그곳은 인공지능 '스카이넷'을 개발한 사이버다인이라는 회사다. 이 회사는 미래에 인류를 위협하는 기계 반란의 시초가 된다. 미래 지도자인 존 코너와 '우리 편' 터미네이터는, 자아를 가지게 된 후 인류를 위협할 '예정'인 스카이넷의 핵심이 되는 마이크로칩을 파괴하려 한다. 이곳에서 핵심 기술을 연구하던 핵심 연구원도 자신이 개발하는 기술이 미래에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연구와 데이터를 파괴하는 데 동참한다.

2024년, 터미네이터가 실제로 등장한다면 사이버다인처럼 존립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기업이 있다. 바로 미국의 엔비디아(NVIDIA)다. 엔비디아는 1993년 젠슨 황이 설립한 반도체 및 인공지능 기술의 선두주자다. 이 회사는 그래픽 처리장치(GPU)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AI)과 딥러닝 분야에서 GPU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면서 엔비디아는 AI 혁신의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이가 영화 속 스카이넷과 같은 예상치 못한 불행한 파멸을 두려워하면서도, AI 발전으로 보다 진보된 미래를 꿈꾸고 있다.

황은 대만에서 태어나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엔비디아를 창립한 이후, 끊임없는 기술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회사를 전 세계 시가총액 3위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친근한 외모의 황은 직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리더십을 통해 회사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그의 스타일 면에서 흥미로운 점은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검은 가죽 재킷을 입는다는 것이다. 그가 가죽 재킷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힌 적은 없다. 다만, 방진복 이미지의 인텔, 청바지와 터틀넥으로 상징되는 애플처럼, 단순한 복장은 업무 집중도를 높이고 독특한 개성을 각인시킬 수 있다.

옷은 단순한 외형을 넘어, 그 인물이 수행하는 역할과 사명에 대해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또 다른 SF 영화 '매트릭스'에서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모피어스는 인류의 구세주로 생각되는 네오를 발굴하고 훈련시킨다. 그의 검은 재킷은 강인함과 리더십을 드러내며, 네오를 구세주로 만드는 여정에서 중요한 상징적 역할을 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을 예비한 선지자로 묘사된다. 그는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르고 살았다. 이런 옷차림은 금욕적이고 단순한 삶의 상징으로, 그가 세상의 화려함을 멀리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집중했음을 강조한다. 가죽 재킷을 입은 황은 활력이 넘쳐 보이고, AI의 발전이 가져올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보여준다. 터미네이터 영화 속 가죽 재킷을 입은 T-800처럼 그도 끝까지 인간의 편에 서있기를 기대한다.


오흥권 분당서울대병원 대장암센터 교수·'의과대학 인문학 수업' '타임 아웃'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