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소아마비 백신 접종을 위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일부 지역에서 군사 작전을 일시 중지하기로 했다. 최근 가자지구에서 25년 만에 소아마비 발병 사례가 나오며 확산 우려가 커지자, 미국이 백신 접종을 위해 전투를 멈추라고 압박한 결과로 전해졌다. 전쟁 장기화에 따른 의료 시스템 붕괴에 이어 구호 단체가 재차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는 등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이스라엘이 최근 소아마비 백신 접종을 위해 가자에서 일부 군사작전을 일시 중지하기로 했다고 미 국무부 당국자를 인용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가자 휴전 협상을 타진하기 위해 지난 19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만나 백신 접종을 위한 작전 중지를 직접 압박한 결과라고 한다. 백신 접종 기간과 장소 등은 조율 중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총리실은 "안보 내각의 승인을 받은 특정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가자 일부 지역을 배정하기로 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을 내며 말을 아꼈다. WP는 "휴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인도적 전투 중단을 승인했다는 논란을 피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최근 가자지구에선 생후 10개월 아기의 소아마비 확진 사례가 나왔다. 가자에서 소아마비 발병은 25년 만이다. 수족 마비 증상 등을 겪는 소아마비는 주로 오염된 물을 통해 퍼지며 전염성이 강하다. 소아마비는 예방 접종으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종식된 지 오래지만, 전쟁으로 가자 보건 시스템이 붕괴된 탓에 전문가들은 소아마비 발병 가능성을 경고해 왔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가자 내 아동 64만 명에 대한 백신 접종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실행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였다.
이스라엘군의 공세 수위가 높아지면서 가자지구 내 인도적 위기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유엔의 구호 단체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의 총격을 받는 일이 또 일어났다. 미 CNN방송 등에 따르면 세계식량계획(WFP) 구호 차량이 지난 27일 가자지구 내 이스라엘방위군(IDF) 검문소 인근에서 10발 이상의 총격을 받았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
인도주의 단체가 이스라엘 공격을 받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4월에도 IDF의 오폭으로 국제 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WCK) 활동가 7명이 숨지는 일이 있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총격을 받은 WFP 차량에) WFP 로고가 선명하게 표시돼 있었다"며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알아보기 쉬운 로고일 것"이라고 이스라엘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스라엘은 28일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에서도 대규모 군사 작전을 감행했다. 작전 결과 팔레스타인인 11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전을 거듭 중인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및 인질 석방 협상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에 인질로 끌려갔다 최근 IDF에 구출된 이스라엘 베두인족(아랍계 유목민) 카이드 파르한 알카디는 이날 고향에 돌아와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하며 인질 전원 석방을 요구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