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에 대해 선을 그었다. 대치 정국에 대한 화살을 국회로 돌리고, 야당을 향한 불신도 드러냈다. 총선 패배 직후였던 불과 4개월 전 야당을 향해 먼저 손을 내밀 때와 딴판이다. 다음 달 1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 대표 간 여야 대표 회담이 이날 결정됐지만,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 기조가 오히려 회담 의제 설정 등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영수회담 관련 질문에 "일단 여야 간 원활하게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수회담에 대해 "이런 문제(대치 정국)가 금방 풀릴 수 있다면 열 번이고 왜 못 하겠느냐"라고 반문하면서 "지금 국회 상황이 (제가)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니라 제가 살아오며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라면서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켰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포함해 '3자 회동'에 대해서도 전혀 가능성도 열어놓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총선 참패 직후였던 지난 4월 영수회담 때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당시 회담에서 양측은 민생회복지원금과 채 상병 특별검사법에 대한 이견만 확인한 채 헤어졌다. 윤 대통령이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한 여야정협의체 구성을 먼저 제안했지만, 이 대표가 이를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임기 반환점을 돌면서 가시화한 성과를 내야 하는 윤 대통령 입장에서, 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입법 독주에 나선 민주당의 모습이 곱게 보였을 리 없다는 분석이다.
의정갈등을 둘러싼 해법을 놓고 당정갈등이 노출된 것도 야당을 빗대 정치권 전체에 대한 윤 대통령의 회의적 시각을 강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정갈등에 대해 선을 그었지만, 의대 증원 문제에 있어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간 간극은 분명히 노출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2026년 의대 증원 유예 제안에 이 대표가 호응한 모양새가 된 것 역시 핵심 국정 과제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윤 대통령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더 키웠을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이날 성사된 여야 대표회담도 기대치를 낮출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영수회담을 위한 징검다리' 성격으로 여야 대표회담을 제안한 이 대표 입장에서도 회의적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해식 민주당 당대표 비서실장이 이날 여야 대표 회동 성사를 발표하면서 "회담 성과가 회의적일 것이라는 당내 여론이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당정갈등을 유리하게 이용하고자 했던 이 대표 입장에서도 윤 대통령의 이날 언급이 대여 전략의 궤도 수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는 얘기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