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남서쪽에는 봉산이라는 이름의 나지막한 산이 있다. 낯선 지명이지만, 봉산은 지난 2020년부터 거의 매해 대벌레,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 등 곤충이 집단 발생하며 미디어에 여러 번 노출된 바 있다. 봉산의 또 다른 연관 키워드는 ‘편백’이다. 2014년부터 은평구가 ‘서울시 최초’ 타이틀을 걸고 진행 중인 ‘봉산 편백나무 치유의 숲’ 조성 사업의 영향이다. 이는 기존 산림을 베어낸 자리에 편백 숲을 조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은평구는 지난 10년 동안 봉산 내 6.5헥타르(㏊) 규모 산지에 약 1만3,400그루의 편백을 심어왔다.
‘멀쩡한 숲을 훼손한 자리에 기후에 맞지도 않는 수종을 심었다’는 비판이 나올 때마다 은평구가 해명·보도자료를 통해 자주 언급하는 명제가 있다. ‘기존 ‘불량림’을 제거하고 편백림을 조성했다’는 것. 이미 사라진 숲이니 얼마나 불량했는지 직접 확인할 길은 제한적이지만, 인근에 아직 남아 있는 유사한 환경의 숲을 찾아 '불량림'의 실체를 살피고자 했다. 본보는 '생명다양성재단'의 협조를 받아 봉산 내 편백 조림지와 자연림에서 4개 분류군(식물류, 조류, 곤충류, 균류)에 대한 생물상 비교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기간은 지난 8월 5일부터 8월 18일까지, 조사 구역은 2017년 북사면 자연림을 모두베기 하고 조림한 편백림 1ha와 이곳에서 약 470m 떨어진 북사면의 자연림 1ha로 설정했다.
식물상 조사 결과 편백 조림지에서는 71종이, 자연림에서는 89종이 기록됐다. 이 중 목본(나무)은 자연림(44종)이 조림지(14종)에 비해 3배 이상 많은 종이 관찰됐다. 두 조사지 간 교목(목본 중 한 개의 굵은 줄기를 갖는 나무)의 생활사 단계에 차이가 있었다. 인공림에서는 편백나무와 일부 벚나무속을 제외한 대부분의 교목이 어린 임목인 반면, 자연림에서는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아까시나무 등 다양한 교목의 성숙 임목과 어린 임목이 고루 관찰됐다. 이는 벌채 후 편백나무를 일괄적으로 심은 인공림에서는 성숙 임목의 종 다양성이 감소한 반면, 자연림에서는 다양한 교목 종이 여러 생활사 단계에서 공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편백림 인공림은 높은 울폐도(숲이 우거진 정도)로 인해 산림 아래쪽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이 적으며, 특히 타감작용(식물에서 화학물질이 생성돼 다른 식물의 생존·성장을 저해하는 작용)이 활발해 하층식생의 종 다양성과 풍부도가 감소하는 특성이 있다. 실제 조림지를 관찰한 바에 따르면 편백이 빼곡히 자라난 지역은 상대적으로 하층식생이 낮은 밀도로 분포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계곡부 또는 편백이 고사한 구역은 수관층(나무의 꼭대기 부분)이 열리며 지면에 닿는 빛의 양이 증가해 생태계 교란 식물인 환삼덩굴, 서양등골나물, 돼지풀 등이 우세하게 자라나 있었다.
자연 생태계는 먹이사슬로 연결된 피라미드 형태의 네트워크로 비유되곤 한다. 식물계는 이 피라미드 구조에서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다. 봉산의 경우처럼 편백 한 종을 위해 원래 있던 숲의 식물 다양성을 완전히 제거한다면, 바로 위에 위치하며 식물을 먹이 삼는 곤충계가 받을 영향은 자명하다. 곤충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총 112종 중 97종이 자연림에서, 15종이 편백 조림지에서 관찰됐다. 곤충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는 편백 단일종 조림으로 인한 식물 종다양성의 감소, 특히 밀원식물(꿀벌이 자라나는 데 필요한 꽃꿀과 꽃가루를 제공하는 식물)의 감소를 이 같은 큰 차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식물상을 조사한 전문가도 동일하게 언급한 내용이지만, 조림지에서 편백의 고사 등으로 수관이 개방돼 드러난 나지에서는 생태계교란식물로 지정된 환삼덩굴이 우점한 상태인데, 이로 인해 밀원식물의 다양성에 영향을 크게 받는 야생 화분매개자의 다양성 감소가 두드러졌다. 반면, 자연림에서는 청줄벌, 애꽃벌, 스즈키나나니등에, 호리꽃등에, 녹색박각시, 부전나비류와 같은 벌목, 파리목, 나비목 등 화분매개자가 다양하게 발견됐다. 또한 넓적배사마귀, 긴날개여치, 밑들이파리매와 같은 포식자, 동애등에와 초록파리와 같은 분해자 등 생활사 단계의 여러 층위에서 생태적 역할을 수행하는 다양한 곤충들이 발견됐다.
조류의 먹이가 되는 식이식물을 분석한 결과, 편백 조림지에서 5종(누리장나무, 산딸기 등), 자연림에서 20종(때죽나무, 산딸나무, 가막살나무, 팥배나무 등)이 관찰됐다. 실제 조류상 조사 결과는 이러한 서식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 편백 조림지에서 조류 총 7종 19개체, 자연림에서는 16종 43개체가 관찰되며 종 다양성과 밀도에서 차이를 보였다. 자연림은 하층식생이 풍부하게 발달해 있고, 다층림으로 구성돼 있어 산솔새, 동박새, 동고비, 어치 등 산새들이 다수 관찰됐다. 딱따구리류가 선호하는 고사목도 그대로 있어 먹이활동 터와 번식둥지 터 역할을 하고 있었고, 실제 청딱따구리와 오색딱따구리가 관찰됐다.
버섯(담자균류) 조사 결과도 두드러진 차이를 보였다. 조림지에서는 7종, 자연림에서는 39종이 관찰됐다.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는 “버섯의 출현은 출현식물과의 연관성이 매우 높다”며 “자연림의 버섯 출현이 많은 것은 아까시나무와 상수리나무 등 교목과 버섯이 건강한 상호 의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증거다”라고 설명했다. 자연림에서는 사마귀광대버섯, 노란대망그물버섯, 꾀꼬리버섯 등 나무와 공생하는 균근균(공생균)이 15종 발견된 반면, 편백림 조림지에서는 2종 발견됐다. 그는 “편백숲 조림사업을 하면서 기존의 숲의 나무들이 가지고 있었던 버섯들의 공생관계도 상당 부분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서울 생물다양성 포럼에서 우리곤충연구소의 정부희 박사는 '도시숲의 곤충생태 및 보전방안'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한 수종으로 이뤄진 단일림 조성 및 원예종 식재가 도시숲 곤충들의 다양성 감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같이 생물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도시 숲 관리는 결국 환경 변화에 민감한 취약종을 감소시키고, 내성이 강한 외래종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조사 결과에서 편백 인공림의 곤충 종 다양성이 자연림과 견주었을 때 매우 낮았을 뿐 아니라, 북미산 외래침입종이자 산림병해충으로 지정된 소나무허리노린재가 대규모로 발견됐다.
이번 조사를 총괄한 성민규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은 “조림지에서 자연림 대비 식물종은 약 20%(목본:68%), 조류는 약 56%, 곤충은 약 85%, 담자균류는 약 82% 적은 종 수가 출현했다”면서 “식물종의 단순화가 식물을 번식기주, 먹이원, 은신처 등으로 이용하는 곤충과 다양성을 크게 감소시키고, 다양한 곤충과 식물을 먹이로 하는 조류의 다양성도 잇따라 감소시켰으며, 또 임목과 공생하는 공생균과 죽은 임목에서 자라는 부생균의 다양성 감소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성 연구원은 “조사기간이 더 확보됐다면 종 다양성의 격차는 더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여 말했다.
한편, 구청이 기존 숲의 벌목과 편백숲 조림의 근거로 드는 영급구조 개선을 통한 '숲의 불균형' 해소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엄태원 숲복원생태연구소장은 “영급개선은 영급(나이대)이 동일한 나무가 있는 숲을 개량해 청년, 중년, 장년등 다양한 연령층이 사는 숲으로 가꾸는 것을 뜻한다”면서 “중간 중간 쇠퇴하는 나무들을 일부 솎아베기하고서 생겨난 공간을 어린 나무로 벌충하는 식으로 숲의 영급구조를 다양화해 나가는 것이지, 봉산처럼 일괄적으로 베고 한 종의 묘목으로 대체하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엄소장은 “봉산은 분류하자면 목재생산이 주목적인 경제림이 아니라 기후 완화 등 공익적 가치에 중점을 두는 도시숲이다”라며 “경제림에서 주로 쓰이는 영급구조 개선이라는 개념이 필요에 따라 오도된 사례”라고 부연했다.
생물상 조사=생명다양성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