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유틸리티차(SUV) 레인지로버를 길에서 마주치면 특유의 매끈한 디자인이 시선을 잡아 끈다. 특히 옆모습을 보면 주름진 곳 없이 깔끔한 표면에 일자로 쭉 뻗은 선과 뒤로 갈수록 완만하게 낮아지는 차체 라인이 날렵하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다른 SUV가 우람하고 힘 좋은 느낌을 주고자 여러 장식을 덧붙이는 것과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뉴 레인지로버 벨라를 실제 시승해보니 이 차는 마치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있지만 옷 안에는 근육질 몸매를 숨긴 신사 같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최근 서울 시내에서 뉴 레인지로버 벨라 P400 다이내믹 HSE 트림을 시승해봤다. 색상은 자다르 그레이(Zadar Grey)였고 이 트림의 가격은 1억2,420만 원이다.
2017년 첫선을 보인 레인지로버 벨라는 7월 1일 부분 변경모델로 돌아왔다. 외관에는 프런트 그릴과 발광다이오드(LED) 헤드라이트, 리어 램프 등이 새 디자인으로 적용됐다. 특히 레인지로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보닛 위 레터링은 새 그릴, 시그니처 주간주행등(DRL)과 조화를 이뤄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줬다.
차 문 앞에서 손을 대면 자동으로 오토 플러시 도어 핸들이 올라온다. 이를 살며시 잡아당겨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부드러운 가죽과 편안한 시트가 몸을 감싸줬다. 시선을 앞으로 옮기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플한 내부에 다시 놀랐다. 물리버튼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센터콘솔에는 토글 방식 기어만 단출하게 배치돼 있었다.
운전자 앞에는 12.3인치 클러스터가 놓였고 센터페시아에는 11.4인치 커브드 디스플레이 화면만 보였다. 이전 모델에는 인포테인먼트 화면 아래 물리버튼으로 존재하던 공조 조작 버튼까지 흔적 없이 사라졌다. 공조를 포함한 대부분의 기능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통해서 조작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최신형 전기차의 내부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물리버튼이 사라졌다고 크게 당황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레인지로버가 자랑하는 피비 프로(PIVI Pro)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스마트폰을 조작하듯 직관적 사용성이 특징이다. JLR코리아 관계자는 "단 두 번의 터치만으로 차량의 전체 기능 80%를 제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터치스크린 양옆에 항상 표시되는 사이드바에는 실내 온도 조절, 오디오 볼륨 등 자주 쓰는 기능이 배치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뉴 레인지로버 벨라는 무선 업데이트 기능도 제공해 항상 최신 버전의 인포테인먼트를 경험할 수 있다.
시동을 켜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점잖은 신사처럼 느껴졌던 겉모습과 다르게 우렁찬 엔진음을 낸다. 근육질 야성이 깨어나는 순간이다. P400 다이내믹 HSE 트림은 6기통 3.0리터(L) 인제니움 가솔린 터보 엔진을 품었다. 이 엔진이 8단 자동 변속기와 조합해 최고 출력 400마력(PS)을 내며 최대토크 56.1kg·m의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최고 속도는 시속 250㎞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걸리는 시간(제로백)은 단 5.5초다.
뉴 레인지로버 벨라의 인제니움 가솔린 엔진은 특히 마일드하이브리드(MHEV) 기술을 적용해 탁월한 성능과 효율성 모두를 구현해냈다고 한다. MHEV 기술은 감속 시 전기 에너지를 수집해 48볼트(V) 리튬이온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가속할 때 엔진 구동을 돕는다. 고속 주행에서 강력한 힘을 내는 비결이다.
승차감도 빼놓을 수 없다. SUV에 강력한 힘을 내지만 실내에서는 소음과 진동을 예민하게 잡아낸 듯한 주행 질감을 느끼게 한다. 고급 세단 못지않은 승차감이다. JLR 코리아 측은 이 트림에 기본 장착된 어댑티브 다이내믹스와 전자식 에어 서스펜션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어댑티브 다이내믹스는 휠 움직임을 초당 500회, 차체 움직임을 초당 100회 모니터링해 주행 조건에 맞게 승차감과 핸들링을 개선해준다. 전자식 에어 서스펜션은 최대 251㎜까지 지상고를 높여 어떤 지형에서도 안정감을 유지한다.
뉴 레인지로버 벨라 판매 가격은 P250 다이내믹 SE 트림 9,010만 원, P400 다이내믹 HSE 트림 1억2,420만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