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계 숙원인 간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그동안 의사 업무 일부를 떠맡아 불법과 편법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진료지원(PA)간호사들이 마침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진료지원 업무 범위와 PA간호사 자격 요건 등을 시행령으로 정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가 남아 향후 합의 과정에서 진통을 겪을 소지가 있다.
국회는 28일 본회의를 열어 재석 의원 290명 중 283명 찬성으로 간호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다음 달 국무회의를 거쳐 공포되면 9개월이 지난 내년 6월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지위와 의무를 명시하고 PA간호사의 의료 행위를 보호한다. 지난해 21대 국회에서 본회의 문턱을 넘고도 대통령 거부권에 좌초됐으나, 올해 2월 전공의 이탈 이후 전공의 업무 일부를 대신하는 PA간호사 제도화 필요성이 커지면서 입법에 속도가 붙었다. 현재 진료 현장에서 활동 중인 PA간호사는 1만3,000여 명에 달한다.
PA간호사 업무의 구체적 범위와 한계는 보건복지부령에 위임됐다. 정부는 올해 2월 시작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가이드라인을 발전시켜 시행령에 세부 지침을 담을 계획이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진료지원 업무에는 경계가 불분명한 지점이 많아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만들어야 한다"며 "명확한 기준이 세워져야 간호의 질도 향상될 수 있다"고 말했다.
PA간호사로 활동하려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임상 경력과 교육과정 이수 등 자격을 갖춰야 한다. 석사 과정 후 별도 자격 시험을 통과한 전문간호사도 진료지원 업무를 할 수 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학 교수는 "전문간호사 교육과정처럼 경력직 일반간호사 대상 교육, 훈련,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해 체계적으로 PA간호사를 양성해야 한다"며 "간호법 제정을 계기로 다른 보건의료 직역과의 업무 분담, 협력 체계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PA간호사 제도 정착과 함께 의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등 다른 직역과 연동해 간호인력 수급 추계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초고령 사회에 간호인력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의사만이 아니라 간호인력 수급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간호 업무 고도화에 따른 별도 보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 교수는 "진료지원 업무가 구체적 효과를 창출한다면 간호사의 의료행위에 수가를 지불해야 하고, 그래야 병원도 간호인력 확대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간호법 시행 전까지는 의료계 내부 갈등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사협회는 "업무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데 따른 혼란 등으로 의료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그 피해가 오롯이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라며 "간호법은 직역 갈등을 심화시키고 전공의 수련 생태계를 파괴하는 의료 악법인 동시에 간호사들조차 위험에 빠뜨리는 자충수의 법"이라고 맹비난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도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자격 학력 제한 폐지가 법에 담기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반면 간호협회는 "2005년 국회 입법 시도 후 무려 19년 만에 이뤄진 매우 뜻깊고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우수한 간호인력 양성, 적정 배치, 숙련된 간호인력 확보를 위한 국가의 책무가 법제화됐다"고 환영했다. 보건의료노조도 "불법 의료행위에 내몰려 온 PA간호사를 법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되는 것"이라며 "의사인력 부족과 전공의 진료거부 장기화에 따른 의료공백을 해결하고 환자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