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랑주 점에 위성 보내면 뭐가 좋을까... 우주청 시그니처 미션이 L4 탐사?

입력
2024.09.06 10:00
24면
태양 가까이 국산 위성 놓고 우주날씨 예보?
현실에 적절한 임무인가... 타당성 검토 준비 
"생뚱맞다... 대세는 유인 탐사인데 뒤처질라"
"선점하면 국제 협력 무대 데뷔할 계기 될 것"

편집자주

우주,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에너지 등 첨단 기술이 정치와 외교를 움직이고 평범한 일상을 바꿔 놓는다. 기술이 패권이 되고 상식이 되는 시대다. 한국일보는 최신 이슈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들의 숨은 의미를 찾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분석하는 '테크 인사이트(Tech Insight)'를 격주 금요일 연재한다.

'한국의 나사(NASA·미국항공우주국)'를 표방한 우주항공청이 출범 100일을 맞아 첫 '시그니처 미션(대표 임무)'을 모색하고 있다. 차세대 발사체나 달 착륙선 개발 계획이 있지만, 이들은 우주항공청이 없던 시절부터 세웠던 목표다.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한국 우주기술을 브랜딩할 새 임무가 필요하다. 존리 우주항공임무본부장 합류 이후 가장 유력한 시그니처 미션으로 '제4 라그랑주 점'(L4) 탐사가 꼽히고 있다. 지난달 말 우주항공청은 L4 탐사의 타당성 검토를 포함한 선행연구를 진행할 전문가 공모에 들어갔다.

L4 탐사는 태양 가까이에 우리 위성을 갖다 놓자는 것이다. 위성을 태양 근처까지 가져가는 건 지구 둘레에 올려놓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들여야 하고, 기획부터 실행까지 10년은 족히 걸린다. 기술만 보면 불가능하지는 않다. 관건은 그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느냐다. 우주 선진국의 발길이 아직 닿지 않은 곳인 만큼 성공하면 선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달과 화성에 사람을 보내려는 선진국들의 유인 우주탐사 흐름과 동떨어진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적지 않다. 독자적인 길을 택하는 게 나을까, 늦었지만 대세를 따르는 게 나을까.

라그랑주 점이 도대체 어디길래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 태양이 지구를 끌어당기는 힘, 즉 중력에 붙잡혀 같은 궤도를 1년마다 공전한다. 태양만 중력이 있는 게 아니다. 지구 역시 태양보다는 작지만 중력이 있기 때문에 주위에서 달이 공전한다. 이처럼 태양계 천체들은 중력과 속력의 균형을 통해 서로 부딪히지 않고 각자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태양이 당기는 힘과 지구가 당기는 힘이 균형을 이루는 곳이 생긴다. 어떤 사람의 양손을 두 사람이 양쪽에서 각각 잡고 끌어당기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당기는 힘의 방향은 정반대면서 크기는 같아 가운데 사람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지점이 바로 '라그랑주 점'이다. 이곳을 처음 발견한 18세기 프랑스 수학자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

라그랑주 점은 태양과 지구 주변에 총 다섯 군데(L1~5)가 존재한다. 이들 지점에 위성을 갖다 두면 태양, 지구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지구와 함께 사이좋게 태양을 공전하게 된다. 위성이 한 지점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고, 기존 위치를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들지 않기 때문에 라그랑주 점에는 '우주의 주차장'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지구에 가까우면서 지구와 일직선상에 있는 L1과 L2에는 이미 여러 나라가 위성을 '주차'시켰다. 각각 태양과 심우주를 관측하기에 최적의 위치라서다. 미국항공우주국의 유명한 우주망원경 '제임스 웹'이 바로 L2에 있다. 태양 반대쪽으로 지구와 태양 사이 거리만큼 떨어져 있어 너무 먼 L3를 제외하면 남은 지점은 지구·태양과 위아래로 정삼각형을 이루는 지점인 L4와 L5다. 두 지점 모두 아직 아무도 간 적이 없다. 유럽우주국(ESA)이 L5를 이미 탐내고 있음을 감안하면 우리에게는 L4가 선택지다.

L4에 가면 뭘 할 수 있나

지난 7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우주연구위원회(COSPAR) 학술총회 당시 우주항공청은 L4에 위성을 보내야 하는 이유로 우주날씨 예보를 들었다. 우주날씨에 중요한 건 태양이다. 조용해 보이지만 태양은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 흑점 폭발 같은 요란한 활동 때는 막대한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고, 지구 자기권에까지 영향을 미쳐 극지방에서 오로라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인류가 지구 밖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 태양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일은 그래서 점점 더 중요해진다. 위성을 띄우는 것부터 이를 이용한 통신은 물론, 우주비행사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한 우주 활동을 위해서는 태양 상태를 미리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인류의 감시망은 아직 제한적이다. 태양을 관측하는 망원경들이 L1, 즉 지구 가까이에만 있어서다.이는 마치 지구에서 바다의 일부만 보고 태풍을 예보하는 것과 같다. 지구 전체의 해수 온도와 해류 흐름, 기압 배치 등을 알아야 태풍에 철저한 대비가 가능한데, 가까운 바다만 쳐다보고 있으면 위험이 코앞에 닥쳐야 알게 된다.

태양 망원경을 L4나 L5에 두면 시야가 훨씬 넓어진다. 이를테면 태양이 자전하기 때문에 L5에서는 지구에 영향을 미칠 활동을 미리 보고 진화 양상을 예측할 수 있다. L4에서는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방사선을 만드는 태양 활동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우주항공청에 따르면 발사각을 조정할 경우 L4를 중심으로 수직으로 8자를 그리며 움직이는 궤도에 위성을 안착시킬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 위성이 오르락내리락 움직이며 태양의 극지방을 관측하는 게 가능해진다. 지금까지 지구 공전 궤도 면에서만 봐왔던 것과는 다른, 태양의 새로운 모습을 만날 기회다.

우주 시장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

이런 탐사를 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야 한다. '무엇을 손에 쥘 수 있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미국과 중국은 각각 우호국과 손잡고 누가 먼저 화성에 사람을 보내는지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흐름에 동참하려면 우리나라도 뭔가 구체적인 기여를 해야 한다. 한국이 우주 분야 세계 7위라고는 해도, 앞선 국가들과 격차가 매우 크고 내세울 만한 기술도 없어 이렇다 할 역할을 못하고 있다. 독보적 기술을 보유한 일본과 캐나다는 이미 미국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미션에 자국 우주인들을 승선시켰다.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갈리는 게 이 대목이다. L4 탐사에 긍정적인 이들은 L4에 위성을 보내본 기술력이 미국의 아르테미스, 문 투 마스(Moon To Mars) 미션 참여로 이어질 수 있다고 기대한다. 지구에서 달로, 달에서 화성으로 이동하며 활동이 갈수록 많아질 텐데, 이때 한국 위성으로 태양 방사선 상태를 예보해 위험 요소를 피할 수 있게 된다면 우주 시장에 큰 기여라는 것이다. L4 위성에 통신 기능까지 추가할 경우 지구와 화성 간 통신을 원활하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란 전망이다.

L4 탐사를 하기로 결정하더라도 한국 독자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발사체 기술 수준이 높지 않은 데다 위성에 붙일 각종 첨단 장비 생산 기술도 아직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과 협력이 필수다. COSPAR에서 우주항공청은 행사에 참석한 해외 우주기관들에 협력을 제안하기도 했다. 전인수 나사 제트추진연구소 우주방사선연구센터장은 "나사도 제한된 예산으로 우선순위에 따라 임무를 운영하다 보니, L4에는 아직 못 가고 있다"면서 "어려운 우주 미션을 한국이 협력을 통해 풀어간다면 국제 무대에 쉽게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남들이 안 간 데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많다. 우리가 미국이나 유럽 우주기관과 비교할 처지는 아니라는 현실적인 판단에서다. 기존 우주개발 계획에서 거듭 강조해온 달·화성 탐사 임무를 해내기에도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데, L4 탐사는 생뚱맞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천문 전문가는 "올해 나사가 내놓을 '태양물리학 10년 계획'에도 L4 탐사가 포함될지 미지수라 국제 협력을 추진한다 해도 동력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여태 아무도 안 간 데는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오히려 L4 아닌 다른 임무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김승조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명예교수는 "우주항공청의 간판 탐사 미션이 필요한 건 맞지만, 라그랑주 점을 염두에 둔다면 지구에 영향을 미칠 태양 활동을 미리 볼 수 있는 L5에 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선진국들이 L4 아닌 L5를 선택하는 배경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미다.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면 게이트웨이 시설이나 우주 데이터센터 등 다른 측면에서 기여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우리도 미국과 중국처럼 유인 우주기술에 집중해야 할 때라는 시각도 설득력을 얻는다. 이금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주는 대형 프로젝트로 산업화 마중물을 마련한다. 돈이 많이 들다 보니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플래그십(주력) 프로젝트가 필요한 것"이라며 "유인 우주기술 개발에 20년은 걸리는 만큼 미래 우주시대를 대비하려면 지금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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